원자는 왜 결합하는가 — 공유결합과 H₂

두 개의 수소 원자가 만나 H₂가 되는 사건을 에너지 논변·하이틀러–런던 파동함수·모스 퍼텐셜의 세 각도에서 끝까지 따라간다.

들어가며

이 장은 책 전체에서 처음으로 “분자”를 정면으로 다루는 장이다. 4장까지 우리는 한 원자, 길어야 한 전자의 운동을 봤다. 이번에는 두 원자가 마주 보고, 두 개의 전자가 두 핵 사이에 자리를 잡는 가장 단순한 분자 — 수소 분자 H₂ — 가 무대다. 이 장이 끝나면 독자는 “왜 두 H가 H₂로 묶이는가”라는 질문에 에너지로, 파동함수로, 퍼텐셜 곡선으로 — 세 가지 다른 언어로 동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6장의 분자궤도 이론은 여기서 본 하이틀러–런던 그림의 자연스러운 일반화다.

본론 1 — 결합의 에너지 논변

H 원자 한 개의 바닥상태 에너지는 EH=13.6E_H = -13.6 eV다 (이 책에서 EHE_H, 수소 원자의 이온화 에너지의 부호 반대로 쓰겠다). 두 H 원자를 서로 무한히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전체 에너지는 단순히 2EH=27.22 E_H = -27.2 eV. 이 값이 “결합이 일어나지 않은 기준선”이다.

두 원자를 서서히 가까이 가져오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핵-핵 반발 +e2/(4πϵ0R)+e^2/(4\pi\epsilon_0 R) 은 분명히 에너지를 올린다. 그러나 전자 두 개는 갑자기 “두 핵이 만든 더 큰 상자”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상자가 커지면 전자의 운동에너지는 내려간다 — 드브로이 관계 λh/p\lambda \sim h/p (de Broglie, 물질파 파장) 에서 λ\lambda 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은 pp 가 작아질 수 있다는 뜻이고, 그러면 p2/2m\langle p^2 / 2m \rangle 이 줄어든다. 더 정확히는, 전자 밀도가 두 핵 사이 공간에 모이면서 두 양성자 모두에게서 동시에 인력을 받아 퍼텐셜 에너지도 함께 내려간다.

이 두 효과가 합쳐져, 어떤 임계 거리 R0.74R \approx 0.74 Å 근방에서 전체 에너지가 2EH2 E_H 보다 낮아진다. 그 차이가 결합 에너지 De4.52D_e \approx 4.52 eV. 실험적으로 H₂를 깨서 두 개의 자유 H 원자로 만드는 데 정확히 그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일반화하면: 결합은 전자 공유가 분리된 원자의 한계보다 전체 에너지를 낮출 때 형성된다. 이 한 줄이 모든 공유결합의 출발점이다.

본론 2 — 하이틀러–런던 (원자가결합) 그림

1927년 하이틀러(W. Heitler)와 런던(F. London)은 H₂에 처음으로 양자역학을 적용했다. 그들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결합 전 두 H 원자 각각이 1s 전자를 한 개씩 가지고 있었다. 그 두 1s 궤도를 ϕA\phi_A, ϕB\phi_B 라 부르고, 분자가 된 뒤에도 그 형태가 거의 살아 있다고 가정한다.

문제는 전자 두 개가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장의 파울리 원리). 따라서 두 전자의 공간 부분과 스핀 부분을 묶은 전체 파동함수는 반드시 두 전자의 라벨 교환에 대해 반대칭이어야 한다. 결합을 만드는 공간 파동함수는 다음 대칭 조합이고

Ψ(1,2)=N[ϕA(1)ϕB(2)+ϕA(2)ϕB(1)]χsinglet(1,2)\Psi(1, 2) = N\left[\phi_A(1)\phi_B(2) + \phi_A(2)\phi_B(1)\right]\,\chi_{\rm singlet}(1, 2)

여기서 NN 은 정규화 상수, χsinglet=12[α(1)β(2)β(1)α(2)]\chi_{\rm singlet} = \frac{1}{\sqrt 2}[\,\alpha(1)\beta(2) - \beta(1)\alpha(2)\,] 은 스핀 싱글렛(singlet, 총 스핀 0) 상태다. 공간이 대칭이므로 스핀은 반대칭이어야 전체가 반대칭이 된다.

부호가 ++ 인 공간 조합은 두 핵 사이에 전자 밀도를 쌓는다 — 두 1s 봉우리가 보강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결합(bonding) 조합이다. 반대로 - 조합은 두 핵 사이에서 노드를 만들고 전자 밀도를 바깥쪽으로 밀어낸다 — 반결합(antibonding) 조합. 그리고 결합 조합은 항상 스핀 싱글렛과 짝지어진다. 화학자들이 말하는 “두 전자가 짝지어 결합을 만든다”는 표현이 바로 이것이다 — 공간이 대칭이 되도록 두 스핀이 반대 방향으로 묶인 상태.

본론 3 — 모스 퍼텐셜 vs. 조화 진동자

핵간 거리 RR 을 바꿔가며 전체 에너지 V(R)V(R) 을 그리면 H₂는 R0=0.741R_0 = 0.741 Å에서 깊이 De=4.52D_e = 4.52 eV 의 우물을 가진다. 이 곡선 모양 자체가 분자의 성격을 결정한다.

평형점 R0R_0 근방에서는 2계 테일러 전개가 잘 들어맞아

V(R)12k(RR0)2V(R) \approx \frac{1}{2} k (R - R_0)^2

조화 진동자(harmonic oscillator) 형태가 된다. kk 는 스프링 상수다. 그러나 RR 이 크게 벗어나면 이 근사는 무너진다 — 조화 우물은 RR \to \infty 에서도 무한히 커지지만, 실제 분자는 충분히 늘어나면 해리된다. 즉 VDeV \to D_e 에서 평탄해져야 한다.

이 한계 거동까지 살리는 가장 유명한 모형이 모스 퍼텐셜(Morse potential) 이다:

V(R)=De[1ea(RR0)]2V(R) = D_e\left[1 - e^{-a(R - R_0)}\right]^2

여기서 aa (단위 1/m) 는 우물 폭을 결정하는 매개변수다. R=R0R = R_0 에서 최솟값 0, RR \to \infty 에서 DeD_e, R0R \to 0 에서 큰 양수 — 세 가지 한계 거동을 모두 만족한다. R0R_0 근방에서 모스를 전개하면 조화 항과 정확히 일치하고, 그때 스프링 상수는

k=2Dea2k = 2 D_e a^2

H₂의 경우 De=4.52D_e = 4.52 eV, R0=0.741R_0 = 0.741 Å, a19.4a \approx 19.4 1/nm. 두 곡선은 R0R_0 근방에서는 거의 겹치지만, 늘어남이 0.05 nm 정도를 넘어가는 순간 갈라지기 시작한다 — 모스는 해리 한계로 부드럽게 누우고, 조화는 비물리적인 무한 복원력으로 폭주한다. 진동 들뜬 상태가 위로 올라갈수록 두 모형의 에너지 간격도 달라진다: 조화는 등간격, 모스는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앵하모니시티).

파이썬으로 확인

# H₂의 모스 퍼텐셜과 조화 근사를 같은 축에 겹쳐 그린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D_e = 4.52          # 결합 해리 에너지 [eV]
R_0 = 0.0741        # 평형 핵간 거리 [nm]
a   = 19.4          # 모스 매개변수 [1/nm]
k   = 2 * D_e * a**2  # 조화 스프링 상수 [eV/nm^2]

R = np.linspace(0.04, 0.30, 400)        # 핵간 거리 [nm]

# 모스: 최솟값이 -D_e가 되도록 평행이동
V_morse = D_e * (1 - np.exp(-a * (R - R_0)))**2 - D_e

# 조화 근사: 같은 평형점·같은 깊이 기준선
V_harm  = 0.5 * k * (R - R_0)**2 - D_e

plt.plot(R, V_morse, label="Morse")
plt.plot(R, V_harm,  label="Harmonic", linestyle="--")
plt.axvline(R_0, color="k", linewidth=0.6)
plt.axhline(0.0, color="grey", linewidth=0.4)
plt.ylim(-5.0, 5.0)
plt.xlabel("R [nm]")
plt.ylabel("V(R) [eV]")
plt.title("H$_2$: Morse vs. Harmonic")
plt.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

print(f"평형점에서의 곡률 일치 확인: k = {k:.2f} eV/nm^2")
print(f"R → ∞ 한계: Morse → 0,  Harmonic → ∞ (비물리)")

결과로 두 곡선이 R0=0.0741R_0 = 0.0741 nm 근방에서는 거의 겹치고, RR 이 0.10 nm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모스는 위 천장 V=0V = 0 에 누워가는 반면 조화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그림이 보이면, 본론 3의 두 한계 거동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다음 장으로

6장: 분자궤도 이론에서는 이 장의 하이틀러–런던 그림을 한 단계 일반화한다. 두 1s 궤도를 그대로 더하고 빼는 대신, 두 원자 궤도의 선형결합으로 새로운 분자 궤도를 만드는 LCAO 절차를 도입하고, 결합·반결합 궤도가 단순한 부호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을 본다. 이 장의 에너지 논변과 싱글렛 짝짓기 그림을 손에 쥐고 들어가면, MO 이론은 같은 풍경을 다른 좌표계에서 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