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간 힘 — 반데르발스, 수소결합, 분산력

분자를 묶는 약한 힘들 — 영구 쌍극자, 유도 쌍극자, 그리고 양자 요동에서 오는 분산력 — 을 하나의 1/r⁶ 그림으로 정리하고, 레너드-존스 퍼텐셜로 손에 쥔다.

들어가며

10장에서 분자의 극성과 분극성을 다뤘다면, 이 장은 그 두 개념이 분자와 분자 사이에서 어떻게 힘으로 나타나는지를 본다. 공유결합은 수백 kJ/mol 짜리 강한 힘이지만, 물이 100 ℃에서 끓고 아르곤이 액체가 되고 게코 도마뱀이 천장에 붙는 것은 모두 그보다 100배쯤 약한 힘 — 분자 간 힘 — 때문이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반데르발스 힘”이 사실 세 가지 다른 기여의 묶음이라는 것, 그 셋이 왜 모두 1/r61/r^6 으로 줄어드는지, 그리고 수소결합이 왜 그 위계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본론 1 — 반데르발스 힘의 세 얼굴

“반데르발스 힘”은 사실 서로 다른 세 가지 인력 기여를 뭉뚱그린 이름이다.

  • 쌍극자–쌍극자(Keesom): 두 영구 쌍극자 μ1,μ2\vec\mu_1, \vec\mu_2 가 서로 방향을 맞추며 끌어당긴다. 모든 방향에 대해 볼츠만 평균을 내면 Uddμ12μ22/(kBTr6)U_{\text{dd}} \propto -|\vec\mu_1|^2 |\vec\mu_2|^2 / (k_B T \cdot r^6).
  • 쌍극자–유도 쌍극자(Debye): 한 영구 쌍극자가 옆 분자의 전자구름을 분극시킨다. Udiμ2α/r6U_{\text{di}} \propto -\mu^2 \alpha / r^6.
  • 유도–유도 쌍극자(London 분산력): 무극성 분자끼리도 전자구름의 순간적인 양자 요동으로 끌어당긴다. ULα1α2/r6U_{\text{L}} \propto -\alpha_1 \alpha_2 / r^6. 비활성 기체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유일한 인력이며, 액체 아르곤의 응집, 알케인의 끓는점, 게코의 발바닥이 모두 이 힘의 작품이다.

핵심은 세 기여가 모두 1/r61/r^6 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대로 가까운 거리에서는 전자구름이 겹치며 파울리 반발이 작동하는데, 이쪽은 훨씬 가팔라서 경험적으로 1/r121/r^{12} 로 모형화한다.

본론 2 — 레너드-존스 12-6 퍼텐셜

이 모든 것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이 레너드-존스(Lennard-Jones) 퍼텐셜이다.

V(r)=4ε ⁣[(σr)12(σr)6]V(r) = 4\varepsilon\!\left[\left(\frac{\sigma}{r}\right)^{12} - \left(\frac{\sigma}{r}\right)^{6}\right]

여기서 ε\varepsilon (epsilon)은 우물의 깊이, σ\sigma (sigma)는 V=0V = 0 이 되는 거리다. 두 항을 미분해서 극소를 찾으면 평형 거리는

re=21/6σ1.122σr_e = 2^{1/6}\sigma \approx 1.122\,\sigma

이고, 그때의 깊이는 정확히 V(re)=εV(r_e) = -\varepsilon 이다. 대표적인 값: 아르곤 ε/kB120\varepsilon/k_B \approx 120 K, σ0.34\sigma \approx 0.34 nm; 메테인 ε/kB148\varepsilon/k_B \approx 148 K, σ0.38\sigma \approx 0.38 nm; 물은 ε/kB78\varepsilon/k_B \approx 78 K, σ0.32\sigma \approx 0.32 nm 정도에 수소결합을 위한 쿨롱 항이 추가로 붙는다. r12r^{12} 반발과 r6r^{6} 인력이라는 단 두 항이, 기체의 응결부터 단백질 접힘 시뮬레이션까지 분자동역학의 표준 출발점이 된다.

본론 3 — 수소결합: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은

수소가 F, O, N 같은 강한 전기음성 원자에 결합하면, 그 수소는 전자가 부족해져 큰 영구 쌍극자를 띠고, 게다가 충분히 작아서 옆 분자의 전기음성 원자에 바짝 다가갈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수소결합(hydrogen bond) 은 보통의 반데르발스 힘보다 훨씬 강하다 — 10–40 kJ/mol 대 보통 London 힘의 약 1 kJ/mol. 또한 방향성이 있어서, 수소는 대략 N–H⋯O 직선 위에 놓여야 한다.

수소결합이 책임지는 일들: 물의 높은 끓는점(분자량이 비슷한 CH4_4161-161 ℃ 에 비해 물은 100 ℃), DNA 이중나선의 안정성, 단백질의 2차 구조, 그리고 얼음이 물보다 밀도가 낮은 현상. 에너지적으로 수소결합은 진짜 공유결합(약 400 kJ/mol)과 보통의 반데르발스 힘(약 1 kJ/mol) 사이에 놓인다 — 결합에 비하면 약하지만, 대부분의 비결합 상호작용에 비하면 강하다. 이 “중간 세기”가 생명 현상이 작동하는 자리다. 너무 강하면 끊어지지 않아 정보를 읽을 수 없고, 너무 약하면 구조를 유지하지 못한다.

파이썬으로 확인

# 아르곤·메테인·크립톤의 레너드-존스 퍼텐셜을 그린다.
# (eps/k_B, sigma) 단위는 (K, nm).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kB = 1.380649e-23  # J/K

species = {
    "Ar": (120.0, 0.34),
    "CH4": (148.0, 0.38),
    "Kr": (164.0, 0.36),
}

r = np.linspace(0.30, 1.00, 400)  # nm

for name, (eps_over_kB, sigma) in species.items():
    eps = eps_over_kB * kB                       # J
    V = 4 * eps * ((sigma / r)**12 - (sigma / r)**6)
    plt.plot(r, V / kB, label=f"{name} (ε/k_B={eps_over_kB:.0f} K)")
    r_e = 2**(1/6) * sigma
    plt.plot(r_e, -eps_over_kB, "o", color="0.3")
    print(f"{name}: r_e = {r_e:.3f} nm, 우물 깊이 = {eps_over_kB:.0f} K")

plt.axhline(0, color="0.6", lw=0.8)
plt.xlabel("r / nm"); plt.ylabel("V(r) / k_B  [K]")
plt.ylim(-200, 200)
plt.title("Lennard-Jones 12-6 퍼텐셜")
plt.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

세 곡선이 모두 re=21/6σr_e = 2^{1/6}\sigma 에서 깊이 ε-\varepsilon 의 극소를 지나면, ”1/r121/r^{12} 반발 + 1/r61/r^6 인력”이라는 두 항짜리 처방으로 세 분자의 응집 경향을 손에 쥔 셈이다.

다음 장으로

12장: 고체의 전자 상태에서는 분자가 아니라 102310^{23} 개의 원자가 규칙적으로 늘어선 고체로 시야를 넓힌다. 6장의 결합/반결합, 7장의 휘켈 사다리가 무한히 길어지면 띠(band) 가 되고, 그 띠의 채워짐 여부가 금속·반도체·절연체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