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의 전자 상태 — 띠 구조의 직관

원자 하나의 띄엄띄엄한 준위가 102310^{23} 개로 늘어서면 띠가 된다. 1차원 강결합 모형 하나로 금속·반도체·절연체의 경계를 그린다.

들어가며

11장까지 우리는 원자와 분자, 길어야 벤젠 고리 정도를 다뤘다. 이 장은 같은 LCAO 논리를 102310^{23} 개의 원자가 규칙적으로 늘어선 고체로 끌고 간다. 놀라운 것은 새로운 물리가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이다 — 6장의 결합/반결합, 7장의 휘켈 사다리를 무한히 길게 늘이면 그것이 바로 에너지 띠(band) 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원자 준위가 어떻게 띠로 퍼지는지, 1차원 강결합 모형의 분산 관계 E(k)E(k) 를 어떻게 적는지, 그리고 페르미 준위가 띠의 어디에 놓이느냐가 왜 금속·반도체·절연체를 가르는지를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본론 1 — 원자에서 사슬로, 사슬에서 결정으로

원자 하나는 띄엄띄엄한 에너지 준위를 가진다. 원자 두 개를 가까이 붙이면 각 준위가 결합/반결합 둘로 갈라진다(6장). 원자 NN 개를 1차원 사슬로 늘어놓으면, 각 원자 준위가 NN 개의 촘촘히 붙은 준위로 갈라진다 — 이것이 다. 실제 결정은 N1023N \sim 10^{23} 이므로 띠는 사실상 연속적인 상태들의 모임이 되고, 그 상태들은 준운동량(quasi-momentum) kk 로 이름표가 붙는다. 원자 준위 사이의 간격은 띠와 띠 사이의 띠 간격(band gap) 으로 남는다.

핵심 그림은 이렇다: 띄엄띄엄한 원자 준위 → 갈라짐 → 무한히 촘촘한 준위의 띠. “고체가 왜 도체이거나 부도체인가”라는 물음은 이제 “전자가 어느 띠까지 채워졌는가”라는 물음으로 바뀐다.

본론 2 — 1차원 강결합 모형

같은 원자가 간격 aa 로 늘어선 사슬을 생각하자. on-site 에너지 α\alpha (alpha), 최인접 호핑 β\beta (beta, 음수). 7장의 휘켈과 똑같은 구조다. 사슬의 병진 대칭 덕분에 고유함수는 블로흐 파(Bloch wave) ψk(xn)=eikan\psi_k(x_n) = e^{i k a n} 이고, 이것을 슈뢰딩거 방정식에 넣으면 분산 관계가 떨어진다.

E(k)=α+2βcos(ka),k[πa,+πa]E(k) = \alpha + 2\beta\cos(ka), \qquad k \in \left[-\frac{\pi}{a}, +\frac{\pi}{a}\right]

띠 너비는 4β4|\beta| 다. β<0\beta < 0 이므로 띠의 바닥은 k=0k = 0, 꼭대기는 k=±π/ak = \pm\pi/a 에 있다. 원자마다 전자를 한 개씩 내놓고 파울리 원리로 한 kk 상태에 2개가 들어간다면, 반만 채워진다(half-filling)k=π/(2a)|k| = \pi/(2a) 까지의 상태가 차고 페르미 준위는 EF=αE_F = \alpha 에 놓인다. 페르미 준위가 띠 안에 있으므로 이 사슬은 금속이다. 만약 원자가 전자를 두 개씩 내놓았다면(닫힌 껍질) 띠 전체가 꽉 차고, 다음 띠는 EF+ΔEgapE_F + \Delta E_{\text{gap}} 에서 시작하므로, 사슬은 간격의 크기에 따라 절연체 또는 반도체 가 된다.

본론 3 — 금속·반도체·절연체

구분은 페르미 준위가 어디에 놓이고 띠 간격이 얼마나 큰가로 정해진다.

  • 금속 (Cu, Al, Na): EFE_F 가 띠 안에 있고 간격이 없다. 전자가 거의 공짜로 움직일 빈자리를 바로 옆에 두고 있으므로 전류가 흐른다.
  • 반도체 (Si: Eg1.1E_g \approx 1.1 eV; Ge: 0.66 eV; GaAs: 1.4 eV): 작은 간격. 상온의 열에너지 kBT0.025k_B T \approx 0.025 eV 로도 일부 전자가 간격을 뛰어넘어 약간의 전도성이 생긴다. 간격의 크기가 흡수 파장 λ=hc/Eg\lambda = hc/E_g 를 정한다.
  • 절연체 (다이아몬드 Eg5.5E_g \approx 5.5 eV, SiO2_2 약 9 eV): 간격이 열적 들뜸으로는 넘을 수 없을 만큼 크다. 가시광선 광자(≤ 3.1 eV)로도 전자를 띄울 수 없어서 투명하다.

금속·반도체·절연체라는 일상의 분류가, 결국 “띠가 얼마나 찼고 다음 띠까지 얼마나 머냐”라는 두 숫자로 환원된다.

파이썬으로 확인

# 1차원 강결합 띠 E(k) = alpha + 2*beta*cos(k*a) 를 그린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alpha = 0.0     # eV (에너지 영점)
beta  = -1.0    # eV (최인접 호핑)
a     = 1.0     # Å (격자 간격)

k = np.linspace(-np.pi / a, np.pi / a, 400)
E = alpha + 2 * beta * np.cos(k * a)

E_F = alpha     # 반채움 → 페르미 준위
bandwidth = 4 * abs(beta)
print(f"띠 너비 = {bandwidth:.1f} eV")

plt.plot(k, E, color="C0")
plt.fill_between(k, E, E_F, where=(E <= E_F), alpha=0.3, label="채워진 상태")
plt.axhline(E_F, color="0.4", ls="--", label=f"페르미 준위 E_F = {E_F:.1f} eV")
plt.xlabel("k  [1/Å]"); plt.ylabel("E(k)  [eV]")
plt.title("1차원 강결합 띠 구조")
plt.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

띠 너비가 4β=44|\beta| = 4 eV 로 떨어지면, 실제 나트륨 같은 금속의 띠 너비(약 3 eV)와 같은 차수의 값이다. 장난감 모형 한 줄이 진짜 금속의 수치를 차수까지 맞춘 셈이다.

다음 장으로

13장: 구조와 성질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이다. 0장에서 던진 질문 — “고전 화학으로는 왜 안 되는가” — 으로 시작해 14장에 걸쳐 쌓아 온 언어를, 전도성 고분자와 OLED 같은 실제 물질에 풀어 놓으며 책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