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와 빛의 상호작용 — 흡수 스펙트럼과 선택률

분자가 어떤 광자를 받아들이는지는 공명 조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 전이쌍극자모멘트가 0이면 그 전이는 금지된다.

들어가며

4장에서 광자는 양자상태를 잇는 알갱이로 등장했고, hν=EfEih\nu = E_f - E_i 라는 공명 조건이 흡수·방출의 진동수를 정했다. 그런데 공명 조건을 만족한다고 해서 모든 전이가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흡수 스펙트럼의 한 봉우리가 왜 거기 있는지(공명), 왜 어떤 봉우리는 아예 없는지(선택률), 그리고 왜 봉우리가 무한히 날카롭지 않고 일정한 폭을 갖는지(선형)를 각각 한 줄로 말할 수 있다.

본론 1 — 흡수와 페르미 황금률

전이가 일어날 확률을 다루려면 진동수 ν\nu 의 빛을 시간에 따라 진동하는 전기장으로 보고, 그 전기장이 분자를 살짝 흔드는 것을 섭동으로 취급한다. 각진동수 ω\omega (오메가, ω=2πν\omega = 2\pi\nu) 로 진동하는 전기장이 만드는, 상태 i|i\rangle 에서 f|f\rangle 로의 전이율은 최저차 섭동론에서

Wif=2πfμ^E0i2δ(EfEiω)W_{i \to f} = \frac{2\pi}{\hbar} |\langle f | \hat{\mu} \cdot \vec E_0 | i \rangle|^2\, \delta(E_f - E_i - \hbar\omega)

로 주어진다. 이것이 페르미 황금률(Fermi’s Golden Rule) 의 쌍극자 근사 형태다. 여기서 μ^=qr\hat\mu = q \vec r쌍극자 연산자로, 전하 qq 가 위치 r\vec r 에 있을 때의 쌍극자모멘트다. E0\vec E_0 는 빛의 전기장 진폭이고, 디랙 델타 δ(EfEiω)\delta(E_f - E_i - \hbar\omega) 는 에너지 보존 — 즉 공명 조건 — 을 강제한다.

핵심은 행렬요소 fμ^i\langle f | \hat\mu | i \rangle 다. 이 양을 전이쌍극자모멘트(transition dipole moment) 라 부른다. 전이율은 이 양의 절댓값 제곱에 비례하므로, 만약 대칭성 때문에 fμ^i=0\langle f | \hat\mu | i \rangle = 0 이 되면 공명 조건을 아무리 잘 맞춰도 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전이를 금지(forbidden) 되었다고 한다. 선택률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본론 2 — 선택률

원자의 한 전자 전이를 보자. fμ^i\langle f | \hat\mu | i \rangle 의 공간 부분은 r^\hat r 을 끼고 있는데, r^\hat r 은 각운동량으로 보면 =1\ell = 1 의 성분을 가진다 (방향 벡터는 pp 궤도처럼 변환한다). 각운동량 덧셈 규칙에 따라 fr^i\langle \ell_f | \hat r | \ell_i \ranglef=i±1\ell_f = \ell_i \pm 1 일 때만 0이 아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Δ=±1\Delta\ell = \pm 1 규칙이다 — sps \to p, pdp \to d 는 허용, sss \to s, sds \to d 는 금지.

원자의 다른 전기쌍극자 규칙도 같은 출처에서 나온다: 자기양자수는 Δm=0,±1\Delta m_\ell = 0, \pm 1, 스핀은 Δs=0\Delta s = 0 (전기쌍극자 근사에서 빛은 스핀을 직접 뒤집지 못한다).

분자에서는 규칙이 두 갈래로 갈린다. 진동 전이는 전이 도중 쌍극자모멘트가 변해야 한다 — 그래서 등핵 이원자분자인 N2N_2, O2O_2 는 적외선을 흡수하지 못한다. 늘어나도 쌍극자모멘트가 0인 채이기 때문이다. 전자 전이의 경우, 중심대칭을 가진 분자에서는 전이가 일어나려면 패리티가 gug \to u 로 바뀌어야 한다 (라포르테 규칙). 같은 패리티끼리는 fr^i\langle f | \hat r | i \rangle 의 적분 피적분함수가 홀함수가 되어 적분이 0이 된다.

본론 3 — 선형: 로런츠 곡선

에너지 준위는 무한히 날카롭지 않다. 들뜬 상태는 유한한 수명 τ\tau (타우) 를 가지므로 — 시간-에너지 불확정성으로 — 에너지에 폭이 생긴다. 이 자연선폭(natural linewidth) 은 다음 로런츠 곡선(Lorentzian profile) 을 만든다:

L(ω)=γ/π(ωω0)2+γ2L(\omega) = \frac{\gamma/\pi}{(\omega - \omega_0)^2 + \gamma^2}

여기서 ω0\omega_0 는 공명 각진동수, γ\gamma (감마) 는 반폭이다. 반치전폭(FWHM)은 2γ=1/τ2\gamma = 1/\tau — 들뜬 상태가 빨리 죽을수록 봉우리가 넓어진다.

실제 기체에서는 두 가지가 더해진다. 분자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여 도플러 이동을 겪는 도플러 넓힘, 그리고 분자끼리 충돌해 위상이 흐트러지는 충돌 넓힘. 도플러 기여는 가우스 모양이라, 관측되는 봉우리는 로런츠와 가우스의 합성곱보이트 곡선(Voigt profile) 이 된다. 여기에 분광기 자체의 분해능이 또 한 번 합성곱으로 작용해 스펙트럼을 더 매끄럽게 뭉갠다.

파이썬으로 확인

# 세 개의 로런츠 봉우리를 만들고, 분광기 분해능을 흉내 낸
# 가우스 커널로 합성곱하여 봉우리가 뭉개지는 모습을 본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w = np.linspace(0, 7, 700)          # 광자 에너지 그리드 [eV]
dw = w[1] - w[0]

def lorentzian(w, w0, gamma):
    return (gamma / np.pi) / ((w - w0)**2 + gamma**2)

# 세 전이: 2.0, 3.5, 5.0 eV, 자연선폭 gamma = 0.1 eV
gamma = 0.1
spec = sum(lorentzian(w, w0, gamma) for w0 in (2.0, 3.5, 5.0))

# 분광기 분해능: FWHM 0.3 eV 가우스 커널 (같은 그리드 간격)
fwhm = 0.3
sigma = fwhm / (2 * np.sqrt(2 * np.log(2)))
g = np.arange(-3 * sigma, 3 * sigma, dw)
kernel = np.exp(-g**2 / (2 * sigma**2))
kernel /= kernel.sum()              # 정규화
conv = np.convolve(spec, kernel, mode='same')

plt.plot(w, spec, label='로런츠 3개 합')
plt.plot(w, conv, label='분해능 합성곱 후')
plt.xlabel('광자 에너지 [eV]')
plt.ylabel('흡수 (임의 단위)')
plt.title('흡수 스펙트럼과 분광기 분해능')
plt.legend(); plt.tight_layout()
plt.show()

합성곱한 곡선은 세 봉우리의 가운데 디테일을 씻어내 더 낮고 넓게 만든다. 만약 세 봉우리의 간격이 분해능 0.3 eV보다 좁았다면, 합성곱 뒤에는 셋이 하나의 넓은 봉우리로 합쳐져 분간할 수 없게 된다 — 분광기의 분해능이 곧 “구별할 수 있는 두 전이의 최소 에너지 간격”인 셈이다.

다음 장으로

10장: 극성과 분극에서는 이 장에서 행렬요소로만 등장한 쌍극자모멘트를 정면으로 다룬다. 분자가 영구 쌍극자모멘트를 갖는다는 것, 외부 전기장 속에서 분극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나면, 전이쌍극자모멘트가 왜 흡수 세기의 척도가 되는지가 더 또렷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