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의 모양과 전자 상태 — VSEPR, 혼성화, 텀 기호

원자가전자의 수만으로 분자 모양을 예측하고, 같은 논리로 원자 바닥상태에 2S+1LJ^{2S+1}L_J 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들어가며

7장에서는 다전자 분자의 슬레이터 행렬식과 분자궤도(MO)를 다뤘다. 이번 장은 좀 더 손으로 잡히는 그림 — 분자가 왜 그 모양을 띠는가 — 로 내려온다. H2_2O 가 굽고, NH3_3 가 우산이고, CH4_4 가 정사면체인 이유는, 풀어 보면 모두 “전자쌍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려 한다”는 한 문장의 결과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중심 원자 주위의 원자가 수와 외톨이쌍 수만으로 분자 모양을 즉시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이 어떻게 혼성궤도라는 수학적 그림과 맞물리는지, 또 원자 수준에서는 같은 사고가 2S+1LJ^{2S+1}L_J 라는 텀 기호로 정리된다는 점까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다.

본론 1 — VSEPR: 전자쌍이 자리를 정한다

VSEPR(valence-shell electron-pair repulsion) 모델의 전제는 단 하나다. 중심 원자 주위의 전자쌍 — 결합쌍이든 외톨이쌍(lone pair)이든 — 은 서로 반발하므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배치를 택한다. 이 한 줄에서 모양이 결정된다.

세는 양은 입체수(steric number, SN) 다.

SN=(결합한 원자 수)+(외톨이쌍 수)\text{SN} = (\text{결합한 원자 수}) + (\text{외톨이쌍 수})

입체수별로 떨어지는 표준 배치는 다음과 같다.

  • SN = 2 → 직선형, 결합각 180°. 예: BeCl2_2, CO2_2.
  • SN = 3 → 평면 삼각형, 120°. 예: BF3_3.
  • SN = 4 → 정사면체, 109.5°. 예: CH4_4. 외톨이쌍 1개면 삼각뿔(trigonal pyramidal) 로 무너져 NH3_3 (약 107°). 외톨이쌍 2개면 굽은꼴(bent) 로 더 좁혀져 H2_2O (약 104.5°).
  • SN = 5 → 삼각쌍뿔(trigonal bipyramidal), 축 90°·적도 120°. 예: PCl5_5.
  • SN = 6 → 정팔면체, 90°. 예: SF6_6.

H2_2O 의 결합각이 정사면체 이상값 109.5° 보다 더 좁은 104.5° 인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외톨이쌍은 양성자에 묶여 있지 않아 공간적으로 더 퍼져 있고, 결합쌍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외톨이쌍이 결합쌍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밀어 각도를 줄인다. NH3_3 의 107° 도 같은 효과의 약한 버전이다. VSEPR 은 양자역학을 동원하지 않고도 이 정도까지 정량적으로 맞춘다.

본론 2 — 혼성화: 원자궤도를 다시 빚는 법

VSEPR 이 어떤 모양이 되는가 를 말한다면, 혼성화(hybridization)그 모양에 맞춰 중심 원자의 원자궤도(AO)를 어떻게 재조합해야 하는가 를 말한다.

탄소의 바닥상태 전자배치는 1s22s22p21s^2 2s^2 2p^2 이지만, CH4_4 처럼 동등한 네 결합을 만들 때 우리는 2s2s 1개와 2p2p 3개를 섞어 네 개의 등가 혼성궤도 sp3sp^3 를 만든다. 이 네 궤도는 정사면체의 네 꼭짓점을 향한다. BF3_3 나 에틸렌의 탄소처럼 평면 삼각형이 필요하면 2s2s + 2px2p_x + 2py2p_y 를 섞어 세 개의 sp2sp^2 와 하나의 남는 2pz2p_z 가 되고, 아세틸렌의 탄소처럼 직선이 필요하면 2s2s + 2px2p_x 만 섞어 두 개의 spsp 와 두 개의 남는 2p2p 가 된다. 규칙은 한 줄이다.

입체수=혼성궤도 수\text{입체수} = \text{혼성궤도 수}

남은 비혼성 pp 궤도는 옆 원자의 같은 pp 와 만나 π\pi 결합을 만든다(6장). 이중결합은 sp2sp^2 + π\pi, 삼중결합은 spsp + π×2\pi \times 2 다.

한 가지 주의. 혼성화는 측정된 사실 이 아니라 사후 기술 이다. 분자가 정사면체 모양을 한다는 실험 결과를 받아들고, 그것에 맞는 궤도 기저를 우리가 선택 한 것이다. 그래도 이 기술 덕분에 결합각, π\pi 의 존재, 평면성 같은 성질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다.

본론 3 — 원자의 텀 기호 2S+1LJ^{2S+1}L_J

같은 사고를 원자 수준에서 정리하면 텀 기호(term symbol) 2S+1LJ^{2S+1}L_J 가 된다. 한 원자의 전체 궤도 각운동량을 LL, 전체 스핀을 SS (대문자, 모든 전자의 합), 전체 각운동량을 J=L+SJ = L + S 라 부르자. 표기법은 다음과 같다.

  • 위 첨자 2S+12S+1다중도(multiplicity).
  • 가운데 글자 — LL 값. L=0,1,2,3L = 0, 1, 2, 3 \to S, P, D, F.
  • 아래 첨자 — JJ.

이 이름표는 같은 전자배치 안에서 미세하게 다른 상태들을 구분하는 데 쓰인다. 어느 것이 바닥상태 가 되는지는 훈트의 법칙(Hund’s rules) 이 결정한다.

  1. SS 를 가능한 한 크게.
  2. 같은 SS 안에서는 LL 을 가능한 한 크게.
  3. 반쪽보다 덜 찬 껍질에서는 JJ 를 가능한 한 작게 (반쪽 이상이면 반대).

질소 (1s22s22p31s^2 2s^2 2p^3) 로 직접 해 보자. 2p2p 의 세 자리 m=1,0,+1m_\ell = -1, 0, +1 에 전자 셋이 들어가는데, 훈트 1번이 셋을 모두 같은 스핀으로 정렬시켜 S=3/2S = 3/2. 자기양자수 합은 1+0+1=0-1 + 0 + 1 = 0, 즉 L=0L = 0 → 글자는 S. J=LSJ = |L - S| 부터 L+S|L + S| 까지 중에서 반쪽보다 덜 찬 경우라면 가장 작은 값을 고른다: J=3/2J = 3/2. 결과는

4S3/2^4 S_{3/2}

이것이 질소의 바닥상태 이름표다. 다중도 4는 “같은 에너지의 마이크로상태가 2S+1=42S+1 = 4 가지”라는 뜻이다.

분자에서도 같은 종류의 기호가 있다. H2_2 의 바닥상태는 1Σg+^1\Sigma_g^+, O2_2 의 바닥상태는 3Σg^3\Sigma_g^- (그래서 산소 분자는 상자성이다). Σ,Π,Δ\Sigma, \Pi, \Delta 는 분자축 방향 각운동량의 LL 대응이고, g/ug/u 는 반전 대칭, ±\pm 는 거울 대칭의 라벨이다. 더 깊은 분류는 9장 분광학에서 다시 만난다.

파이썬으로 확인

# VSEPR 분류기: 결합 수와 외톨이쌍 수만으로 입체수와 모양을 돌려준다.
# 실험적 결합각도 함께 출력해 본다.

SHAPES = {
    (2, 0): ("linear",               180.0),
    (3, 0): ("trigonal planar",      120.0),
    (4, 0): ("tetrahedral",          109.5),
    (3, 1): ("trigonal pyramidal",   107.0),
    (2, 2): ("bent",                 104.5),
    (5, 0): ("trigonal bipyramidal",  90.0),
    (6, 0): ("octahedral",            90.0),
}

def vsepr(bonding, lone):
    sn = bonding + lone
    shape, angle = SHAPES[(bonding, lone)]
    return sn, shape, angle

cases = [
    ("H2O",   2, 2),
    ("NH3",   3, 1),
    ("CH4",   4, 0),
    ("BeCl2", 2, 0),
    ("BF3",   3, 0),
    ("PCl5",  5, 0),
    ("SF6",   6, 0),
]

print(f"{'formula':<6}  {'SN':>2}  {'shape':<22}  angle")
print("-" * 46)
for formula, b, l in cases:
    sn, shape, angle = vsepr(b, l)
    print(f"{formula:<6}  {sn:>2}  {shape:<22}  {angle:5.1f}°")

출력의 각 줄이 본문에서 예측한 모양·각도와 일치한다면, “전자쌍은 멀리 떨어지려 한다”는 한 줄짜리 규칙으로 일곱 분자의 형상을 손에 쥔 셈이다.

다음 장으로

9장: 분자와 빛의 상호작용에서는 이 장에서 정리한 분자 상태 — 모양, 혼성화, 텀 기호 — 가 빛을 만나면 어느 상태로 전이 할 수 있는지, 그 선택규칙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본다. 4장의 광자 그림과 이번 장의 상태 그림이 거기서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