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공액계 — 휘켈법과 분자의 색
π-공액계 — 휘켈법과 분자의 색
벤젠의 여섯 탄소가 만드는 π 궤도 사다리를 6×6 행렬 하나로 풀면, 분자의 색이 떨어진다.
들어가며
6장에서 두 원자 사이의 결합·반결합 궤도를 보았다면, 이 장은 그 그림을 고리 위로 끌어올린다. 벤젠처럼 평면 위에 탄소가 줄지어 늘어선 분자는 σ 골격 위에 π 전자들이 떠 있고, 이 π 전자들이 분자가 어떤 빛을 흡수할지를 결정한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휘켈(Hückel) 근사가 어떤 세 줄의 가정을 하는지 말할 수 있고, 벤젠의 여섯 π 궤도 에너지를 손으로 — 정확히는 6×6 행렬 대각화로 — 얻을 수 있고, HOMO–LUMO 갭으로부터 그 분자가 가시광선 영역에서 색을 가질지 아닐지를 한 줄로 추정할 수 있다.
본론 1 — 휘켈 근사라는 칼
평면 분자에서 π 전자는 분자면 위아래로 뻗은 탄소 원자궤도 (AO) 가 선형결합한 형태로 존재한다. 개의 탄소가 있으면 개의 AO가 있고, LCAO (linear combination of atomic orbitals) 로 개의 분자궤도 (MO) 가 떨어진다. 문제는 이 MO 들을 구하려면 원리적으로는 푸크 행렬을 풀어야 하는데, 1930년대의 손으로는 무리였다는 점이다.
휘켈(E. Hückel) 은 1931년 네 줄의 거친 — 그러나 효과적인 — 근사로 이 행렬을 단순화했다.
- σ-π 분리: π 전자만 본다. σ 골격은 배경 퍼텐셜로 흡수해 무시한다.
- on-site 적분이 모두 같다: 모든 탄소 에 대해 (alpha, 쿨롱 적분). 는 어차피 모든 MO에 똑같이 더해지므로 에너지 영점일 뿐이다.
- 이웃끼리만 상호작용한다: 두 탄소 가 화학결합으로 직접 이어져 있으면 (beta, 공명 적분, 음수), 아니면 .
- 중첩을 무시한다: — 같은 자리는 1, 다른 자리는 0.
이 네 줄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휘켈 행렬은 분자 골격의 인접행렬(adjacency matrix)에 를 곱하고 대각선에 를 얹은 것이다. 분자의 에너지 문제가 그래프 이론의 문제로 환원된다.
본론 2 — 벤젠의 6×6 행렬
벤젠은 탄소 6개의 고리다. 1번 탄소는 2번과 6번에, 2번 탄소는 1번과 3번에, … 일반적으로 번 탄소는 과 이어진다. 따라서 휘켈 행렬은
순환 대칭(cyclic symmetry) 덕분에 이 행렬은 손으로도 대각화된다. 고리 위 평면파 가 고유함수가 되고, 고유값은
로 떨어진다. 코사인 값을 대입하면 여섯 MO 에너지는 , (이중축퇴), (이중축퇴), 가 된다. 이므로 가장 낮은 에너지는 , 가장 높은 에너지는 .
탄소마다 π 전자를 한 개씩 내놓으니 채워야 할 전자는 총 6개. 파울리 원리로 한 MO에 2개씩, 아래 세 개의 MO가 꽉 찬다 — 이 세 개가 결합 π 궤도다. 가장 위의 채워진 궤도, 즉 HOMO (highest occupied MO)는 에 있고, 가장 아래의 빈 궤도 LUMO (lowest unoccupied MO)는 에 있다. 둘 사이의 갭은
벤젠의 색은 — 색이 있다면 — 이 갭이 결정한다.
본론 3 — 갭에서 색으로
의 표준 휘켈 값은 약 2.7 eV. 그러면 벤젠의 갭은 eV. 광자 에너지와 파장의 관계는 이고, 편의식으로 nm·eV 를 외워두면
가시광선 범위(약 380–750 nm)에서 한참 아래, 깊은 자외선이다. 벤젠은 그래서 색이 없다 — 사람 눈이 보는 빛의 진동수로는 HOMO를 LUMO로 끌어올릴 수 없다.
흥미로워지는 것은 사슬이 길어질 때다. 같은 휘켈 논리를 탄소 개의 직선 폴리엔에 적용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길이 의 1차원 상자 문제(particle in a box)와 같아진다 — 13장에서 정식으로 다시 다룬다. 거기서 이 떨어지고, 사슬이 길수록 갭이 줄어 흡수 파장이 가시광선 안으로 들어온다. 인디고(파란 청바지), 베타-카로틴(당근의 주황), 클로로필(잎의 초록), 헤모글로빈(피의 빨강) — 모두 충분히 긴 π-공액계의 HOMO–LUMO 전이가 우리 망막의 감도 영역에 떨어진 결과다. 분자의 색이라는 일상적 현상은 6×6 또는 그보다 약간 큰 인접행렬의 고유값 차이로 환원된다.
파이썬으로 확인
# 벤젠의 휘켈 행렬을 만들고 대각화한 뒤,
# HOMO-LUMO 갭을 파장으로 환산한다.
import numpy as np
# alpha = 0, beta = -1 단위로 놓는다 (에너지 단위 = |beta|).
n = 6
A = np.zeros((n, n))
for i in range(n):
A[i, (i + 1) % n] = 1.0
A[i, (i - 1) % n] = 1.0
H = -A # alpha = 0, beta = -1 → H_ij = -1 (이웃일 때만)
# 대칭 행렬이므로 eigh 사용.
eigvals = np.sort(np.linalg.eigvalsh(H))
print("MO 에너지 (단위 |beta|):", np.round(eigvals, 3))
# 기대값: [-2, -1, -1, 1, 1, 2]
# HOMO = 3번째(0-index 2), LUMO = 4번째(0-index 3).
gap_in_beta = eigvals[3] - eigvals[2] # = 2
beta_eV = 2.7 # |beta| ≈ 2.7 eV (표준 휘켈 값)
gap_eV = gap_in_beta * beta_eV
hc_nm_eV = 1240.0
lam_nm = hc_nm_eV / gap_eV
print(f"HOMO-LUMO 갭 = {gap_eV:.2f} eV")
print(f"흡수 파장 = {lam_nm:.1f} nm")
print("가시영역(380-750 nm)?", 380 <= lam_nm <= 750)
출력은 [-2, -1, -1, 1, 1, 2], 갭 5.4 eV, 파장 약 230 nm, 가시영역 여부 False. 즉 벤젠은 색이 없다 — 손으로 푼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다음 장으로
8장: 분자의 모양과 전자상태에서는 이 장이 무시했던 σ 골격을 다시 끌어와, 혼성궤도와 VSEPR이 어떻게 분자의 3차원 모양을 결정하는지를 본다. 이 장에서 π 시스템이 색을 정했다면, 다음 장은 σ 시스템이 모양을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