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전자 원자 — 스핀, 파울리, 주기율표

전자는 위·아래 두 얼굴을 가진 자석이다 — 스핀과 파울리 배타원리가 슬레이터 행렬식과 주기율표를 어떻게 통째로 결정하는가.

들어가며

2장에서 우리는 수소 원자의 한 전자가 (n,ℓ,mℓ)(n, \ell, m_\ell)이라는 세 개의 양자수로 분류되는 궤도(orbital)에 살고 있음을 보았다. 이 장은 그 그림에 결정적인 한 가지를 더 얹는다 — 스핀(spin). 스핀이 들어오는 순간 한 궤도에는 전자가 둘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그 “둘까지”라는 한도를 파울리 배타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 가 인수분해할 수 없는 행렬식의 모양으로 강제한다. 이 장을 끝내면 독자는 헬륨에서 우라늄까지의 전자 배치를 외우지 않고 재구성 할 수 있고, 주기율표의 가로·세로가 어떤 양자수의 시각화인지 한 줄로 답할 수 있다.

본론 1 — 스핀: 전자가 가지고 다니는 두 번째 얼굴

전자는 공간 위치 외에 내재 각운동량(intrinsic angular momentum) 을 한 단위 가지고 다닌다. 이것을 S⃗\vec S 라 부르고, 그 크기는 양자역학의 규칙에 따라

∣S⃗∣=ℏs(s+1),s=12|\vec S| = \hbar \sqrt{s(s+1)}, \qquad s = \tfrac{1}{2}

로 고정되어 있다. ℏ\hbar (h-bar, 환원 플랑크 상수) 는 양자역학에서 모든 각운동량의 단위를 결정하는 상수다. 위 공식에서 s=1/2s = 1/2 이 전자에 붙박여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 전자는 “반정수 스핀(half-integer spin)” 입자, 즉 페르미온(fermion) 이다.

스핀이 가진 또 하나의 자유도는 zz 축으로의 투영 이다:

Sz=msℏ,ms=±12.S_z = m_s \hbar, \qquad m_s = \pm \tfrac{1}{2}.

즉 전자의 스핀은 “위” (ms=+1/2m_s = +1/2, 보통 ↑\uparrow 로 적는다) 와 “아래” (ms=−1/2m_s = -1/2, ↓\downarrow) 두 값만 가질 수 있다. 결과: 공간 궤도 하나가 있으면 그것에 스핀 위와 아래를 곱한 두 개의 스핀-궤도(spin-orbital) 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이로써 한 전자의 정체를 완전히 지정하는 양자수는 네 개가 된다 — (n,ℓ,mℓ,ms)(n, \ell, m_\ell, m_s). 허용되는 값은 n=1,2,3,…n = 1, 2, 3, \dots, ℓ=0,1,…,n−1\ell = 0, 1, \dots, n-1, mℓ=−ℓ,…,+ℓm_\ell = -\ell, \dots, +\ell, 그리고 ms=±1/2m_s = \pm 1/2. 화학자의 관습으로 ℓ=0,1,2,3\ell = 0, 1, 2, 3 을 각각 s,p,d,fs, p, d, f 궤도라 부른다. (이 "ss" 는 스핀의 ss 가 아니다 — 19세기 분광학에서 sharp 의 머리글자에서 온 우연한 충돌이니 헷갈리지 말 것.)

본론 2 — 파울리 배타원리와 슬레이터 행렬식

전자는 페르미온이므로 두 전자의 라벨을 맞바꾸면 전체 파동함수가 부호를 뒤집어야 한다 — 이것을 반대칭(antisymmetric) 이라 한다. 식으로:

Ψ(1,2)=−Ψ(2,1).\Psi(1, 2) = - \Psi(2, 1).

여기서 “1, 2” 는 두 전자의 좌표와 스핀을 묶어서 가리키는 라벨이다. 이 규칙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 실험으로 검증된 자연의 기본 사실이며, 전자뿐 아니라 모든 반정수 스핀 입자가 따른다.

두 전자가 서로 다른 스핀-궤도 ϕa,ϕb\phi_a, \phi_b 에 들어가 있다고 하자. 위 반대칭성을 만족시키는 가장 간단한 모양은

Ψ(1,2)=12[ϕa(1)ϕb(2)−ϕa(2)ϕb(1)]=12det⁡ ⁣(ϕa(1)ϕb(1)ϕa(2)ϕb(2))\Psi(1, 2) = \frac{1}{\sqrt{2}}\left[\phi_a(1)\phi_b(2) - \phi_a(2)\phi_b(1)\right] = \frac{1}{\sqrt{2}}\det\!\begin{pmatrix}\phi_a(1) & \phi_b(1) \\ \phi_a(2) & \phi_b(2)\end{pmatrix}

이다. 우변은 2×2 행렬의 행렬식(determinant) 이고, 이 모양으로 적은 다전자 파동함수를 슬레이터 행렬식(Slater determinant) 이라 부른다. 행렬식은 두 행을 맞바꾸면 부호가 바뀌고 두 열이 같으면 0 이 되는 양인데, 이 두 성질이 곧바로 다음 결론을 준다:

  • 전자 1, 2 의 라벨(=행 라벨)을 맞바꾸면 Ψ\Psi 의 부호가 뒤집힌다 — 반대칭이 자동 이다.
  • 두 스핀-궤도가 같으면, 즉 ϕa=ϕb\phi_a = \phi_b 이면 행렬식의 두 열이 같아져 Ψ≡0\Psi \equiv 0 이 된다 — 같은 스핀-궤도에 두 전자가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가장 강한 형태의 파울리 배타원리 다.

슬레이터 행렬식은 NN 전자로도 일반화된다: N×NN \times N 행렬의 행렬식을 N!\sqrt{N!} 로 정규화한 양이 그것이다. 12장에서 분자 궤도법(MO)을 다룰 때 이 형식이 다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본론 3 — 주기율표 읽기: 채움 원리와 훈트의 규칙

이제 위 두 도구로 주기율표 전체를 짓는다. 채움 원리(Aufbau principle) 는 단순하다: 에너지가 낮은 스핀-궤도부터 차례로 채워라. 한 궤도에는 스핀 위·아래 두 자리가 있으므로 전자 두 개를 넣을 수 있고, 그 다음 궤도로 넘어간다. 다전자 원자에서 관찰되는 평균적 채움 순서는

1s→2s→2p→3s→3p→4s→3d→4p→5s→4d→5p→⋯1s \to 2s \to 2p \to 3s \to 3p \to 4s \to 3d \to 4p \to 5s \to 4d \to 5p \to \cdots

이고, 각 s,p,d,fs, p, d, f 의 수용 인원은 각각 2,6,10,142, 6, 10, 14 다 (이는 2(2ℓ+1)2(2\ell+1) 에서 곧장 나온다). 두 가지 핵심 관찰:

  1. s,p,d,fs, p, d, f 블록(block) 은 주기율표의 세로 묶음에 그대로 대응한다 — ss-블록 2열, pp-블록 6열, dd-블록 10열, ff-블록 14열.
  2. 4s4s 가 3d3d 보다 먼저 채워진다는 이상한 순서 — 이것이 4 주기 첫줄의 전이금속(transition metal)을 흥미롭게 만든다. 전이금속 화학의 미묘함은 이 한 줄의 순서 뒤집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훈트의 규칙(Hund’s rule): 에너지가 같은 궤도들이 여러 개 있을 때(예: 2p2p 의 세 궤도 px,py,pzp_x, p_y, p_z), 전자들은 먼저 같은 스핀 방향으로 하나씩 흩어져 들어간다. 그래서 탄소(C, 전자 6개)의 바닥 상태는 1s22s22p21s^2 2s^2 2p^2 이되, 두 개의 2p2p 전자가 한 궤도에 짝지어 있지 않고 두 개의 다른 궤도에 평행한 스핀으로 한 개씩 들어가 있다. 이 사실 하나가 탄소 화학 — 즉 거의 모든 유기화학 — 의 출발점을 결정한다.

파이썬으로 확인

# 헬륨 바닥 상태의 2전자 슬레이터 행렬식을 직접 짜고 반대칭성을 확인한다.
# 공간 1s 궤도 phi(r) = (1/sqrt(pi)) exp(-r), 단위는 a_0 = 1.
import numpy as np

def phi_1s(r):
    return np.exp(-r) / np.sqrt(np.pi)

def alpha(spin):           # 위 스핀에서만 1
    return 1.0 if spin == "up" else 0.0

def beta(spin):            # 아래 스핀에서만 1
    return 1.0 if spin == "down" else 0.0

def chi_up(r, spin):       # 1s, 스핀 위 (스핀-궤도)
    return phi_1s(r) * alpha(spin)

def chi_dn(r, spin):       # 1s, 스핀 아래
    return phi_1s(r) * beta(spin)

def slater(e1, e2):
    r1, s1 = e1
    r2, s2 = e2
    M = np.array([[chi_up(r1, s1), chi_dn(r1, s1)],
                  [chi_up(r2, s2), chi_dn(r2, s2)]])
    return np.linalg.det(M) / np.sqrt(2)

e1 = (0.5, "up")
e2 = (1.2, "down")
psi_12 = slater(e1, e2)
psi_21 = slater(e2, e1)   # 전자 라벨 교환
print(f"Psi(1, 2) = {psi_12: .6f}")
print(f"Psi(2, 1) = {psi_21: .6f}   (부호가 반대여야 함)")
print(f"합        = {psi_12 + psi_21: .2e}  (≈ 0)")

출력에서 Ψ(1,2)\Psi(1,2) 와 Ψ(2,1)\Psi(2,1) 이 정확히 부호 반대로 나오고 두 값의 합이 기계 정밀도 내에서 0 이면, 슬레이터 행렬식이 페르미온 반대칭성을 자동으로 보장한다는 사실을 손으로 만져본 셈이다. 두 전자에게 같은 스핀-궤도(예: 둘 다 χ↑\chi_\uparrow) 만 주도록 식을 고치면 행렬식이 0 이 되어 — 파울리 배타원리가 식 한 줄로 떨어진다.

다음 장으로

4장: 빛의 양자성 에서는 전자가 한 스핀-궤도에서 다른 스핀-궤도로 뛸 때 흡수하거나 내놓는 빛으로 무대를 옮긴다. 이 장에서 정돈한 양자수 (n,ℓ,mℓ,ms)(n, \ell, m_\ell, m_s) 가 어떤 조합으로만 허용 전이 가 되는지 — 선택 규칙(selection rule) — 가 곧 분광학의 첫 문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