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분 가능한 계 — 토러스 위의 운동

nn개의 서로 가환하는 보존량이 있으면 운동은 nn차원 토러스 위에 갇힌다 — 케플러 문제가 그렇게 닫힌 타원이 되는 이유.

들어가며

해밀턴 형식의 한 가지 매력은 “운동을 푼다”는 행위가 곧 “충분히 많은 보존량을 찾는다”는 행위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라그랑지안에서 출발해 운동방정식을 적고, 그 미분방정식을 직접 풀어 위치를 시간의 함수로 적어 내려가는 작업은 차원이 늘어날수록 빠르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보존량이 충분히 모이면, 그 보존량들이 운동을 위상공간의 한 부분집합 위에 가둬 두고, 그 부분집합 위에서만 운동을 따라가면 되는 그림으로 바뀐다. 그러면 시간에 대한 미분방정식 을 푸는 일이 기하학적 부분집합 위의 점의 자취 를 따라가는 일로 바뀐다 — 같은 운동을 더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점이다.

문제는 “충분히 많다”는 게 정확히 얼마인지, 그리고 그 보존량들이 갖춰야 할 대수적 조건 이 무엇인지다. 막연히 “여러 개” 라고만 적으면, 보존량의 개수만 늘려도 운동이 풀린다는 잘못된 그림이 떠오른다. 사실은 개수만이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관계 가 결정적이다. 두 보존량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따로 따로 자기 흐름을 만들어 낼 때에만, 운동이 곱구조 위에 깔끔히 떨어진다. 그 조건을 한 줄로 정리해 답한 것이 리우빌–아르놀트 정리(Liouville–Arnold theorem) 다. 이 장의 본론 1이 그 정리의 정의와 결론을 풀어 적는 자리다.

이 장을 마치면 독자는 “적분 가능”이라는 단어가 막연한 표현이 아니라 위상공간이 토러스로 잘게 잘린다는 기하학적 진술임을 이해하고, 케플러 궤도가 닫히는 것이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라는 숨은 보존량 때문임을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토러스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도넛의 다른 이름 정도로만 다가오겠지만, 이 장에서 그 도넛이 운동이 사는 무대 라는 그림으로 살아 들어오면, nn 자유도 적분 가능계의 식들이 갑자기 단순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 운동이 nn 차원 도넛 위의 등속 직선이라는 한 줄로 모든 게 정리된다.

본론은 셋이다. 본론 1은 푸아송 괄호와 가환의 정의에서 출발해 리우빌–아르놀트 정리의 가설과 결론, 그리고 작용–각 변수의 그림을 손에 쥐여 준다. 본론 2는 그 정의가 얼마나 강한 조건 인지를 음미하는 자리다 — 적분 가능계가 왜 일반적이지 않고 예외적인지, 그 예외성이 4장의 KAM 이론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짚는다. 본론 3은 케플러 문제 하나를 정밀하게 분석해, 명백한 보존량만으로도 적분 가능이지만 추가로 한 개 더 있어서 궤도가 닫힌다는 사실을 본다. 그 추가 보존량이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이고, 그것이 케플러가 가진 숨은 대칭 의 정체다.

2장에서 본 흐름과 정준 변환의 동치성 이 이 장의 출발선에 놓인다. 보존량 하나는 자기 자신의 푸아송 흐름 — 즉 짧은 정준 변환의 1-매개변수 가족 — 을 만들어 내고, 두 보존량이 가환하면 두 흐름이 서로 교환 한다. 가환하는 보존량이 nn 개 모이면, 이 nn 개의 서로 교환하는 흐름이 nn 차원 부분공간 — 토러스 — 을 빽빽하게 깔아 준다. 이것이 본론 1의 그림의 한 줄짜리 직관이다. 2장에서 잡은 “흐름이 변환이고 변환이 함수에 대응한다” 는 그림이, 이 장에서는 “보존량 = 흐름 = 토러스의 한 축” 이라는 더 구체적인 그림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본론 1 — 리우빌–아르놀트 정리

자유도 nn인 해밀턴 계의 위상공간은 2n2n차원이다. 좌표를 (qi,pi)(q_i, p_i), i=1,,ni = 1, \ldots, n 로 쓰자. 위상공간 위의 두 함수 F,GF, G 에 대해 푸아송 괄호(Poisson bracket)

{F,G}=i=1n(FqiGpiFpiGqi)\{F, G\} = \sum_{i=1}^{n} \left( \frac{\partial F}{\partial q_i} \frac{\partial G}{\partial p_i} - \frac{\partial F}{\partial p_i} \frac{\partial G}{\partial q_i} \right)

로 정의한다. 두 함수가 가환(involution)이라는 말은 {F,G}=0\{F, G\} = 0 이라는 뜻이다.

푸아송 괄호가 무엇을 측정하는 양인지 한 줄로 적자. {F,G}\{F, G\}GG 가 만들어 내는 흐름을 따라 FF 가 어떻게 변하는지 를 재는 양이다. 더 정확히는, 해밀토니안 자리에 GG 를 넣은 해밀턴 흐름을 따라 FF 의 변화율을 적으면 dF/dτ={F,G}dF/d\tau = \{F, G\} 가 된다. 따라서 {F,G}=0\{F, G\} = 0 이라는 것은 — GG 의 흐름을 따라가도 FF 가 변하지 않는다, 즉 FFGG 가 서로의 흐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 는 그림이다. 두 함수가 가환이라는 말은 “두 함수가 만드는 흐름이 서로 교환된다” 는 사실과 같다. 먼저 FF 의 흐름을 시간 τ1\tau_1 만큼 따라가고 그 다음에 GG 의 흐름을 시간 τ2\tau_2 만큼 따라간 결과와, 순서를 바꿔 GG 먼저 FF 나중에 따라간 결과가 같다는 뜻이다.

헷갈리기 쉬운 곳 — 가환은 “단순히 0이 됨” 이상의 그림이다.{F,G}=0\{F, G\} = 0 만 보면 그저 어떤 도함수의 합이 0이라는 사실 같지만, 의미는 한 단계 더 깊다. FFGG 가 가환이라는 사실은 두 함수가 만드는 푸아송 흐름이 위상공간 위에서 서로 어긋나지 않게 깔린다는 기하학적 진술이다. 가환하지 않는 두 보존량의 경우, 한쪽의 흐름이 다른 쪽 보존량의 까지 끌고 가지는 않지만, 그 흐름이 깔리는 방향이 서로 비스듬 하다 — 두 흐름을 합쳐 만든 작은 평행사변형이 자기 자신으로 닫히지 않고 남는 양 이 생긴다. 가환할 때만 그 평행사변형이 정확히 닫혀, 두 흐름이 자기들끼리 곱구조 를 만들어 낸다. 이 곱구조가 본론 1의 결론에서 토러스 곱 S1×S1××S1=TnS^1 \times S^1 \times \cdots \times S^1 = T^n 의 출처다.

이제 정의를 적는다. 2n2n차원 위상공간 위의 해밀턴 계가 리우빌 적분 가능(Liouville-integrable) 하다는 것은, 매끄럽고 함수적으로 독립인 nn개의 함수 F1,,FnF_1, \ldots, F_n 이 존재하여 모든 i,ji, j 에 대해 {Fi,Fj}=0\{F_i, F_j\} = 0 이고, 그중 하나가 해밀토니안 HH 자체인 경우를 말한다.

이 정의에는 세 가지 조건이 박혀 있다. 하나씩 풀어 보자. 첫째, nn 개의 보존량 — 자유도와 같은 개수의 매끄러운 함수 F1,,FnF_1, \ldots, F_n 이 있어야 한다. 자유도가 3이면 보존량도 3개다. 보존량의 개수가 자유도보다 적으면 운동이 부분공간으로 가둬지긴 하지만 그 부분공간 위에서 여전히 추가 자유도가 남아 있어 더 풀어 적기 어렵고, 자유도보다 많으면 운동이 더 작은 차원으로 더 단단히 가둬져서 “초적분 가능(super-integrable)” 이라 부르는 더 강한 상태가 된다. 정확히 nn 개일 때가 본론 1의 정리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자리다.

둘째, 함수적 독립성dF1,,dFndF_1, \ldots, dF_n 이 (위상공간의 거의 모든 점에서) 일차독립이어야 한다. 풀어 말하면 어떤 함수 FkF_k 도 다른 함수들의 함수 로 표현될 수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F2=F12+7F_2 = F_1^2 + 7 같은 관계가 있으면 F2F_2 는 새 정보를 주지 않는다 — F1F_1 의 값만 알면 F2F_2 가 자동으로 결정되니까. 그래서 F1,,FnF_1, \ldots, F_n 이 진짜로 서로 다른 방향 의 보존량들이어야 한다. 더 추상적으로 적으면, 위상공간 위에서 보존량의 그래디언트 벡터 dFidF_i 들이 각 점에서 다른 방향 을 가리켜야 한다는 그림이다.

셋째, 서로 가환 — 모든 쌍 (i,j)(i, j) 에 대해 {Fi,Fj}=0\{F_i, F_j\} = 0 이어야 한다. 단순히 보존량 nn 개를 모았다고 끝이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의 흐름과 교환해야 한다는 추가 조건이 더 강하게 붙는다. 가환하지 않는 nn 개의 보존량이 있어도 정리의 결론 — 토러스 구조 — 은 따라오지 않는다.

헷갈리기 쉬운 곳 — 보존량 nn 개가 있어도 가환 아니면 적분 가능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3차원 자유 입자의 각운동량 세 성분 Lx,Ly,LzL_x, L_y, L_z 는 모두 보존량이지만 서로 가환하지 않는다 — {Lx,Ly}=Lz\{L_x, L_y\} = L_z 같은 관계로 묶여 있어서, LxL_x 의 흐름이 LyL_y 값을 끌어가 버린다. 그래서 3차원 자유 입자에서 세 성분을 모두 보존량으로 잡으려 해도 리우빌 적분 가능 조건은 만족되지 않는다. 대신 E,L2,LzE, |\vec L|^2, L_z 를 잡으면 — 이 셋은 서로 가환한다 — 비로소 정리가 적용된다. 보존량을 고르는 방식 자체가 적분 가능성에 들어가는 셈이다.

헷갈리기 쉬운 곳 — 함수독립성은 dFidF_i 의 일차독립이다. “독립” 이라는 단어는 통계학적·논리적 맥락에서 자주 쓰여서 처음에는 어느 의미인지 헷갈리지만, 여기서는 선형대수적 의미다 — 위상공간의 각 점에서 그래디언트 1-형식 dFidF_i 들이 TMT^*M 의 일차독립 벡터들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좌표로 적으면 야코비 행렬 Fi/(qj,pj)\partial F_i / \partial(q^j, p_j) 의 랭크가 nn 이어야 한다. 거의 모든 점에서 만족되면 되고, 한 점 두 점에서 떨어지더라도(쌍점·교차점·세분 곡선 위) 그 점들은 측도 0의 부분이라 정리의 적용에 큰 지장은 없다.

리우빌–아르놀트 정리의 결론은 두 줄로 요약된다. 공통 등위집합 {Fi=ci}i=1n\{F_i = c_i\}_{i=1}^{n} 이 콤팩트하고 연결되어 있다면, 그 집합은 nn차원 토러스 TnT^n 와 미분동형(diffeomorphic)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적당한 좌표계 — 작용–각 변수(action–angle variables) (Ji,θi)(J_i, \theta_i) — 를 잡으면 해밀턴 방정식이 다음과 같이 자명해진다:

J˙i=0,θ˙i=ωi(J)\dot J_i = 0, \qquad \dot \theta_i = \omega_i(J)

각 토러스마다 고유한 진동수 벡터 ω(J)\omega(J) 가 있고, 운동은 그 토러스를 등속으로 감는 직선이 된다. 진동수들이 유리수 비율이면 궤적은 닫히고, 무리수 비율이면 토러스 전체를 빽빽이 채운다.

왜 등위집합이 토러스인가, 그 직관을 잠깐 그림으로 잡자. nn 차원 다양체 위에 nn 개의 서로 가환하는 어디서나 0이 아닌 벡터장이 깔려 있다고 가정한다 — 여기서는 FiF_i 가 만들어 내는 푸아송 흐름들의 벡터장이 그것이다. 가환하므로 흐름들이 곱구조를 이루고, nn 개의 독립된 R\mathbb{R} 방향으로 매개변수화된 작용이 다양체 위에 자유롭게 작동한다. 콤팩트 조건이 더해지면 — 그 작용의 주기성 이 강제되어 — 각 R\mathbb{R} 방향이 S1S^1 (원) 으로 닫히게 된다. nn 개의 S1S^1 을 곱한 결과가 정확히 Tn=S1×S1××S1T^n = S^1 \times S^1 \times \cdots \times S^1nn 차원 토러스다. 콤팩트 + 연결 + nn 개의 가환 흐름이라는 가설이 토러스라는 결론으로 자동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 정리의 알맹이다.

작용–각 변수의 그림을 한 단계 더 풀어 보자. JiJ_i토러스를 라벨링 하는 변수다. J=(J1,,Jn)J = (J_1, \ldots, J_n) 의 값이 정해지면 그 값에 해당하는 토러스 한 장이 정해지고, 운동은 그 토러스 위를 떠나지 않는다. θi[0,2π)\theta_i \in [0, 2\pi)토러스 위에서의 위치 를 적는 각도 변수다. nn 개의 각도 (θ1,,θn)(\theta_1, \ldots, \theta_n) 이 토러스의 nn 을 따라 한 점의 위치를 정확히 지정한다. 운동이 θ˙i=ωi(J)\dot \theta_i = \omega_i(J) 라는 식을 따른다는 것은 — 각 축을 따라 등속 으로 회전한다 — 는 그림이다. JJ 가 고정이라서 토러스도 고정이고, θ\theta 만 직선처럼 균일하게 증가한다.

헷갈리기 쉬운 곳 — 작용 JiJ_i 는 폐곡선 적분이다. 작용 변수의 일반 공식은 Ji=(2π)1pdqJ_i = (2\pi)^{-1} \oint p\, dq — 어떤 토러스 위의 한 개의 닫힌 곡선 을 따라 pdqp\, dq 를 적분한 양이다. 어느 곡선을 잡느냐가 헷갈릴 수 있는데, 핵심은 같은 토러스 위에서 같은 호몰로지 류에 속한 곡선이면 적분값이 같다 는 사실이다. nn 차원 토러스에는 nn 개의 독립된 루프 — 토러스의 각 축을 한 번씩 감는 닫힌 곡선 — 가 있고, 그 nn 개 루프 각각이 하나의 작용 변수 JiJ_i 를 정의한다. 1자유도 단진자라면 토러스가 단순한 원이고, 그 원을 한 바퀴 감는 적분 J=(2π)1pdqJ = (2\pi)^{-1} \oint p\, dq 가 익숙한 작용이다 — 위상공간 평면 위 닫힌 궤도가 둘러싼 면적의 2π2\pi 분의 일 이라는 그림이다.

진동수 비율의 유리·무리 구별은 토러스 위 궤도의 모양을 결정한다. 2자유도라서 토러스가 도넛 모양일 때를 생각해 보자. ω1/ω2\omega_1/\omega_2 가 유리수 p/qp/q 라면, 도넛을 큰 축 방향으로 pp 번 감고 작은 축 방향으로 qq 번 감은 뒤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 닫힌 궤도다. 비율이 무리수라면 어디로도 정확히 돌아오지 않고, 도넛 표면 전체를 조밀하게 채워 나간다 — 끝없이 가까이 가지만 결코 정확히 같은 점을 두 번 밟지 않는다. 케플러 궤도가 정확히 닫히는 이유는 이 의미에서 진동수들이 유리수 비율 — 사실은 같은 값 — 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 이유가 본론 3의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다.

한 단계 더 음미하자. 유리수 비율의 토러스 위에서는 운동이 주기적 — 정확히 같은 길을 무한히 반복한다. 무리수 비율의 토러스 위에서는 운동이 준주기적(quasi-periodic) — 정확히 같은 점은 두 번 밟지 않지만, 임의로 가까운 점은 무한히 자주 다시 밟는다. 즉 토러스 위의 어떤 한 점을 잡아도, 그 점에서 임의로 작은 반경 안에 운동이 무한히 자주 다시 들어온다. 이런 운동을 에르고딕(ergodic) 하다고 부른다 — 한 궤도가 토러스 위의 어떤 부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그 부분의 측도(면적)에 비례한다는 사실. 시간 평균과 공간 평균이 같다는 의미에서 에르고딕 인데, 이 사실이 통계역학의 출발선이다. 적분 가능계의 무리수 비율 토러스가 가장 단순한 에르고딕 운동 의 사례이고, 그 단순함이 학부에서 통계역학을 처음 만났을 때 왜 시간 평균과 앙상블 평균이 같다고 가정하는가 의 한 줄짜리 정당화 노릇을 한다.

헷갈리기 쉬운 곳 — 토러스가 콤팩트해야 결론이 떨어진다. 정리의 가설 중 콤팩트 조건이 있어야 등위집합이 S1S^1 들의 곱으로 닫힌다. 콤팩트가 깨지면 — 가령 운동이 무한대로 도망갈 수 있다면 — 등위집합이 R\mathbb{R} 방향으로 열려 있게 되고, 결과 다양체가 Tk×RnkT^k \times \mathbb{R}^{n-k} 의 모양이 된다. 케플러 문제의 쌍곡선 궤도 (에너지 E>0E > 0 인 비유한 궤도)가 정확히 이 경우다 — 운동량이 무한히 도망갈 수 있는 자유도가 있어서, 작용–각 변수의 일부가 각도 가 아닌 직선 좌표로 떨어진다. 콤팩트(에너지 E<0E < 0, 타원 궤도)일 때만 본론 1의 토러스 결론이 깔끔히 적용된다.

본론 2 — 적분 가능한 계는 왜 드문가

위상공간 어디서나 nn개의 가환 보존량을 찾을 수 있다는 조건은 사실 매우 강한 조건이다. 일반적인(generic) 해밀토니안은 자기 자신 HH 외의 보존량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적분 가능성은 비일반적(non-generic) 성질이며, 임의의 작은 섭동만 가해도 깨질 수 있다.

이 한 줄을 더 자세히 음미하자. 해밀토니안의 공간 — 가능한 모든 매끄러운 함수 H(q,p)H(q, p) 들의 집합 — 을 생각하면, 그 공간은 무한 차원의 거대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 적분 가능한 해밀토니안들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큰지가 우리의 질문이다. 답은 — 그 부분이 측도 0 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무한 차원 함수 공간에서 측도라는 단어가 엄밀히 정의되기는 어렵지만, 직관적으로는 “임의의 해밀토니안을 손으로 골라 적었을 때, 그것이 적분 가능할 확률이 거의 0이다” 라는 그림이다. 적분 가능계는 우리가 손으로 적기 쉬운 모형 이지만, 위상공간의 자연 자체가 적분 가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에서 자주 만나는 모형 중 적분 가능한 것의 목록은 짧지만 강력하다: 자유 입자, 임의 자유도의 조화진동자, 케플러 문제, 강체의 오일러 자유 회전, 그리고 일차원 다입자 모형인 칼로제로–모저(Calogero–Moser) 모형 등이다. 이 목록이 짧다는 사실 자체가 한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분석적으로 풀 수 있는 모형은 위상공간 전체에서 보면 측도 0의 예외라는 것이다.

목록의 항목 하나하나가 적분 가능인 이유 가 사실 미묘하다. 자유 입자는 운동량 세 성분이 보존량이고 그들이 서로 가환하므로(평행이동의 대칭) 자동으로 적분 가능이다. 조화진동자는 각 모드 의 에너지가 따로따로 보존되어서 — nn 자유도 조화진동자는 사실 nn 개의 1자유도 조화진동자의 단순 곱이라서 — 적분 가능이다. 케플러는 명백한 보존량만으로도 충분히 적분 가능이고, 거기에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까지 더해져서 초적분 가능 이라는 더 강한 상태가 된다(이건 본론 3에서 자세히 본다). 오일러 자유 회전은 강체의 관성 텐서 주축에서 분해되는 우아한 그림으로 적분 가능이고, 칼로제로–모저는 입자들 사이 상호작용이 역수 제곱 이라는 특수한 형태일 때만 적분 가능이다 — 다른 거듭제곱이면 깨진다.

헷갈리기 쉬운 곳 — 적분 가능 ≠ 풀기 쉬움. “적분 가능” 이라는 단어가 “적분으로 풀 수 있다” 의 줄임처럼 들려서, 마치 손으로 식이 떨어진다 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작용–각 변수를 명시적 으로 적는 일은 일반적으로 어렵다 — 케플러조차도 이심률 표현이 초월방정식(케플러 방정식 EesinE=ME - e \sin E = M)을 거쳐야 풀린다. 적분 가능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 운동이 토러스 구조 위에 놓여 있고, 작용–각 변수가 원리적으로 존재한다 — 는 것이다. 그 작용–각 변수를 적분 한 번으로 모두 적어 낼 수 있다는 사실(따라서 “적분 가능”) 은 맞지만, 그 적분이 닫힌 형태로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적분 가능의 진짜 알맹이는 기하학적 구조의 단순성 이다, 식의 단순성 이 아니다.

헷갈리기 쉬운 곳 — 분리 가능 vs 적분 가능. 두 단어가 비슷한데 의미는 다르다. 분리 가능(separable) 이란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이 변수 분리를 통해 풀린다는 뜻이다 — S(q1,,qn)=S1(q1)++Sn(qn)S(q_1, \ldots, q_n) = S_1(q_1) + \cdots + S_n(q_n) 의 모양으로 작용을 적을 수 있다는 사실. 적분 가능(integrable) 은 더 일반적인 개념이다 — nn 개의 가환 보존량이 존재한다는 사실. 분리 가능하면 자동으로 적분 가능이지만, 적분 가능이라도 어떤 좌표계에서도 분리되지 않을 수 있다. 칼로제로–모저 모형이 그 예 — 적분 가능이지만 해밀턴–야코비가 단순한 변수 분리로 떨어지지 않는다. 분리 가능은 식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의 충분조건이고, 적분 가능은 구조가 깔끔하다 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강한 쪽이 적분 가능, 약한 쪽이 분리 가능 — 이라고 한 줄로 적어 두자.

헷갈리기 쉬운 곳 — “측도 0의 예외” 의 의미. 무한 차원 함수 공간에서 측도 라는 단어가 엄밀하게 정의되기 어려우므로, “측도 0” 이라는 표현은 그냥 비유적 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 비유의 정확한 내용은 두 가지로 풀린다. 첫째, 섭동 안정성 의 의미 — 적분 가능 해밀토니안 H0H_0 에 임의로 작은 섭동 εH1\varepsilon H_1 을 더하면, 그 합 H0+εH1H_0 + \varepsilon H_1 은 일반적으로 적분 가능이 아니다. 둘째, 베리(Berry) 의 의미 — 무작위로 골라낸 해밀토니안이 적분 가능일 확률은 0이라는 비유적 진술. 어느 쪽이든 알맹이는 동일하다 — 적분 가능은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특수한 상태이고, 그래서 적분 가능 모형을 손에 쥐고 있다면 그건 행운 이라는 사실이다.

4장에서 다룰 KAM(콜모고로프–아르놀트–모저) 이론은 이 적분 가능성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정량화한다. 어떤 토러스는 살아남고, 어떤 토러스는 사라지며, 그 경계는 진동수 비율의 수론적 성질이 결정한다는 사실이 미리 예고편이다.

KAM의 결론을 한 줄 미리 적어 두자. 적분 가능 H0H_0 에 작은 섭동을 더했을 때, 충분히 무리수 인 진동수 비율을 가진 토러스는 살아남는다 — 약간 변형되지만 위상공간의 한 부분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유리수 또는 거의 유리수 인 진동수 비율을 가진 토러스는 부서진다 — 그 자리에 카오스의 작은 구역이 들어선다. 진동수 비율이 얼마나 무리수인지가 토러스의 내구성 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KAM의 알맹이고, 그 사실은 수론 — 더 정확히는 디오판토스 근사 이론 — 의 깊은 결과와 맞물려 있다. 적분 가능과 카오스의 경계가 수론에 의해 그려진다는 사실은 처음 들으면 의외이지만, 4장에서 차근차근 풀어 본다.

이 장의 시점에서 한 가지 더 짚어 두자. 적분 가능계가 예외 라는 사실은, 그 예외가 그래도 우리에게 쓸모 있는 이유 두 가지로 균형이 잡힌다. 첫째, 적분 가능계는 근사의 출발점 이다. 실제 행성 운동은 정확히 케플러가 아니라(다른 행성들의 섭동이 있다) 케플러 + 작은 보정 이고, 그 보정을 작용–각 변수의 그림 위에서 체계적으로 전개 하는 도구가 4장의 섭동 이론이다. 적분 가능계가 우리 손에 없다면 그 출발점 자체가 없어 섭동 전개를 시작할 자리가 사라진다. 둘째, 적분 가능계는 물리적 직관의 저장소 다. 단진자, 케플러, 조화진동자처럼 학부에서 손으로 풀어 본 모형들이 모두 적분 가능계이고, 그것들이 만들어 주는 직관 — 주기, 진폭, 위상, 보존량 — 이 비적분계의 정성적 거동을 짐작할 때의 기준선이 된다. 적분 가능계는 우주의 대표 선수 가 아니라 우리 사고의 발판 이라는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다.

본론 3 — 케플러의 숨은 대칭

3차원 케플러 문제의 해밀토니안은

H=p22mkrH = \frac{|\vec p|^2}{2m} - \frac{k}{r}

이고 k>0k > 0, r=rr = |\vec r| 이다. 명백한 보존량은 에너지 EE, 각운동량 크기 제곱 L2|\vec L|^2, 그리고 zz 성분 LzL_z 의 세 개 — 3 자유도이므로 이것만으로 이미 리우빌 적분 가능 조건을 만족한다.

이 세 보존량이 서로 가환하는지를 짚어 두자. E=HE = H 는 자기 자신과 자동으로 가환이다({H,H}=0\{H, H\} = 0). L2|\vec L|^2 는 회전 대칭(중심력의 회전 불변성)의 결과로 HH 와 가환이고, LzL_z 도 마찬가지로 HH 와 가환이다. 그리고 {L2,Lz}=0\{|\vec L|^2, L_z\} = 0 — 이건 각운동량 대수의 표준 결과로, LzL_zLL 의 크기를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의 식이다. 세 보존량이 서로 가환하므로, 본론 1의 의미에서 케플러는 리우빌 적분 가능이다. 운동은 위상공간의 3차원 토러스 위에 갇히고, 작용–각 변수가 존재한다.

그런데 케플러는 추가로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Laplace–Runge–Lenz vector)

A=p×Lmkrr\vec A = \vec p \times \vec L - m k \, \frac{\vec r}{r}

는 모든 케플러 궤도를 따라 보존된다. 이 벡터의 방향은 타원 궤도의 장축, 즉 근일점을 향한다. 일반적인 중심력 — 예컨대 1/r1/r 이 아닌 다른 거듭제곱 — 에서는 이 양이 보존되지 않으며, 그래서 행성 궤도가 한 바퀴 돌고도 닫히지 않고 세차(precession) 한다. 케플러 궤도가 정확히 닫힌 타원이라는 사실, 즉 모든 행성이 2π2\pi 마다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이 숨은 대칭의 직접적인 결과다. 증명은 생략하고, 다음 절에서 수치적으로 확인한다.

A\vec A 가 보존된다는 사실의 기하학적 그림을 잠깐 풀어 적자. 타원 궤도 위의 한 점에서 p×L\vec p \times \vec L 을 계산하면, 이 벡터의 방향은 위치에 따라 계속 변한다 — 운동량과 각운동량의 외적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mkr/r-mk\, \vec r/r 도 위치에 따라 변한다 — 단위 위치 벡터의 음수에 비례하니까. 그런데 이 두 변하는 양의 합정확히 일정 하다 — 이것이 LRL 벡터 보존의 식적 내용이다. 두 변하는 양이 서로 정확히 상쇄되어 일정한 결과를 내려면, 식 H=p2/(2m)k/rH = |\vec p|^2/(2m) - k/r정확히 1/r1/r 일 필요가 있다. 1/r21/r^2 도 아니고 1/r1.011/r^{1.01} 도 아닌, 정확히 1/r1/r 일 때만 그 상쇄가 떨어진다. 거듭제곱이 조금만 어긋나도 상쇄가 무너지고 LRL 벡터가 보존되지 않는다.

헷갈리기 쉬운 곳 — 여분의 보존량 = “초적분 가능”. 케플러는 보존량이 자유도(n=3n = 3)보다 많다. 명백한 세 개 E,L2,LzE, |\vec L|^2, L_z 에 LRL의 세 성분 Ax,Ay,AzA_x, A_y, A_z 까지 더하면 총 6개 — 그런데 위상공간 차원이 2n=62n = 6 이라서 6개의 독립 보존량은 위상공간 전체를 점 하나로 줄여 버린다는 결론에 부딪힌다. 사실은 LRL의 세 성분이 명백한 보존량들과 완전히 독립 인 것은 아니고, A2=m2k2+2mEL2|\vec A|^2 = m^2 k^2 + 2mE|\vec L|^2 같은 관계로 묶여 있다 — 그래서 실제 독립 보존량의 개수는 5개로 떨어진다. 자유도 3에 보존량 5개 — nn 보다 많지만 2n2n 보다는 적은 — 이 상태를 초적분 가능(super-integrable) 이라 부른다. 초적분 가능계에서는 모든 (유한) 궤도가 자동으로 닫힌 궤도가 된다. 케플러와 등방성 3차원 조화진동자가 초적분 가능계의 두 대표 예이고, 이 둘이 바로 베르트랑(Bertrand) 정리 — 닫힌 궤도를 만드는 중심력은 1/r1/rr2r^2 둘뿐 — 의 두 후보다.

헷갈리기 쉬운 곳 — LRL 벡터 보존 ⟹ 궤도가 닫힘. A\vec A 가 보존되면 그 방향 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A\vec A 의 방향은 (타원이라면) 근일점을 향한다. 근일점의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 타원의 장축이 회전하지 않는다, 즉 세차가 없다 — 는 그림이다. 거꾸로 적으면, 일반적인 중심력에서는 LRL 비슷한 양이 근사적으로만 보존되어 근일점이 천천히 회전하고, 행성 궤도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약간씩 어긋나면서 세차하는 장미꽃잎 모양을 그린다(이를 세차 진동 또는 근일점 이동 이라 부른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수성의 근일점이 100년에 43 각초씩 이동한다는 유명한 사실은, 정확히 뉴턴 1/r1/r 위의 작은 일반 상대론적 교정 이 LRL 보존을 살짝 깨뜨리기 때문이다. 케플러가 완벽한 1/r1/r 의 특권이고, 그 특권의 식적 정체가 LRL 벡터다.

헷갈리기 쉬운 곳 — 케플러의 SO(4){\rm SO}(4) 숨은 대칭. 더 깊게 들어가면, 케플러 문제는 4차원 회전군 SO(4){\rm SO}(4) 의 대칭을 가진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우리가 보는 공간은 3차원이라 눈에 보이는 대칭은 SO(3){\rm SO}(3) — 3차원 회전 — 뿐이다. 그런데 SO(3){\rm SO}(3) 의 생성자가 각운동량 L\vec L 의 세 성분이듯이, SO(4){\rm SO}(4)나머지 세 생성자가 정확히 LRL 벡터 A\vec A 의 세 성분이다(정규화 인자를 더한 형태로). SO(4)SO(3)×SO(3){\rm SO}(4) \cong {\rm SO}(3) \times {\rm SO}(3) 이라는 군론적 사실까지 더해지면, 케플러는 사실 두 개의 3차원 회전군 으로 분해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수소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주양자수 nn 만으로 결정되고 각운동량 \ell 에 의존하지 않는 우연한 축퇴 가 정확히 이 SO(4){\rm SO}(4) 대칭의 결과다. 학부 1·2학년 수준에서 이 사실을 다 풀어 적기는 어렵지만, “케플러에는 보이지 않는 회전 대칭이 더 있고, 그게 LRL 벡터다” 라는 한 줄만 손에 쥐고 가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음미하자. 베르트랑 정리는 모든 유한 궤도가 닫히는 중심력이 둘뿐 — 1/r1/rr2r^2 — 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케플러(1/r1/r)는 LRL 벡터로, 등방성 조화진동자(r2r^2)는 프라델리 텐서(Fradkin tensor) 라는 비슷한 추가 보존량으로 닫힌다. 다른 모든 거듭제곱에서는 — 1/r1.51/r^{1.5}, rr, r4r^4, 그 어떤 것이든 — 일반 궤도가 세차 한다. 우주의 행성 궤도가 닫힌 타원 이라는 사실, 즉 케플러의 제1법칙이, 사실은 중력이 정확히 역수 제곱 이라는 사실의 기하학적 결과 라는 깊은 그림이 떨어진다. 만일 중력이 1/r2.0011/r^{2.001} 이었다면 모든 행성이 세차했을 것이고, 천문관측이 그 사실을 빠르게 알아챘을 것이다. 적분 가능과 닫힌 궤도 사이의 이 연결은, 단순한 식 모양 하나에 우주의 수학적 운명 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파이썬으로 확인

# 2차원 케플러: m=k=1, 손으로 짠 RK4 적분으로 닫힌 타원을 그린다.
import numpy as np
import matplotlib.pyplot as plt

m, k = 1.0, 1.0

def accel(r):
    # 중력 가속도: -k * r / |r|^3
    return -k * r / np.linalg.norm(r)**3

def rhs(state):
    r, v = state[:2], state[2:]
    return np.concatenate([v, accel(r) / m])

def rk4_step(s, dt):
    k1 = rhs(s)
    k2 = rhs(s + 0.5*dt*k1)
    k3 = rhs(s + 0.5*dt*k2)
    k4 = rhs(s + dt*k3)
    return s + (dt/6.0) * (k1 + 2*k2 + 2*k3 + k4)

dt, T = 0.005, 30.0
N = int(T / dt)
s = np.array([1.0, 0.0, 0.0, 0.8])  # r0=(1,0), v0=(0,0.8)
traj = np.empty((N+1, 4)); traj[0] = s
for i in range(N):
    s = rk4_step(s, dt); traj[i+1] = s

def E_L_A(s):
    r, v = s[:2], s[2:]
    rn = np.linalg.norm(r)
    p = m * v
    E = 0.5*m*np.dot(v, v) - k/rn
    Lz = r[0]*v[1] - r[1]*v[0]            # 2D 각운동량의 z성분
    A = np.array([p[1]*Lz, -p[0]*Lz]) - m*k*r/rn  # LRL 벡터
    return E, Lz, A

E0, L0, A0 = E_L_A(traj[0])
E1, L1, A1 = E_L_A(traj[-1])
print(f"E:  {E0:+.8f} -> {E1:+.8f}")
print(f"Lz: {L0:+.8f} -> {L1:+.8f}")
print(f"A:  {A0} -> {A1}")

plt.plot(traj[:,0], traj[:,1]); plt.axis('equal')
plt.xlabel('x'); plt.ylabel('y'); plt.title('Kepler orbit')
plt.show()

EELzL_z10610^{-6} 이하의 오차로 보존되고, A\vec A 의 두 성분도 거의 변하지 않으면 라플라스–룽게–렌츠 벡터의 보존성을 손으로 만져본 셈이다. 궤도 그림은 정확히 한 바퀴 돈 뒤 같은 자리에 돌아오는 닫힌 타원이어야 한다.

코드의 흐름을 한 번 짚자. 2차원 케플러를 잡은 이유는 닫힌 궤도 라는 본론 3의 결론을 가장 단순한 무대에서 검증하기 위해서다. 3차원 케플러도 결국 한 평면 위의 운동(각운동량 보존 때문에 운동 평면이 고정)이라서, 2차원으로 잡으면 차원이 줄어 코드가 단순해지고 그림도 깔끔해진다. 함수 accel 은 가속도 kr/r3-k\vec r / r^3 을 그대로 옮긴 한 줄이고, rhs 는 위치와 속도를 묶은 상태 벡터의 시간 도함수 — 즉 위상공간 위의 벡터장 — 를 반환한다. rk4_step 은 4차 Runge–Kutta 한 스텝을 손으로 짠 표준 구현이다.

함수 E_L_A 가 세 보존량 — 에너지 EE, 2차원 각운동량 LzL_z, 그리고 2차원 LRL 벡터 A\vec A — 를 계산한다. 2차원에서 각운동량은 스칼라Lz=xvyyvxL_z = x v_y - y v_x — 가 되고, LRL 벡터의 식도 2차원 버전으로 단순해진다 — A=(pyLz,pxLz)mkr/r\vec A = (p_y L_z, -p_x L_z) - mk\, \vec r/r. 이 단순화된 식이 3차원 식의 평면 운동에서의 한정 이라는 사실은 손으로 한 번 확인해 보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 3차원 p×L\vec p \times \vec L 에서 운동 평면(여기서는 xyxy 평면) 위의 성분만 남기면 정확히 이 두 줄이 된다.

초기 조건 r0=(1,0)\vec r_0 = (1, 0), v0=(0,0.8)\vec v_0 = (0, 0.8)타원 궤도 를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다. 원 궤도라면 v0=k/r0=1.0v_0 = \sqrt{k/r_0} = 1.0 이어야 한다 — v0=0.8v_0 = 0.8 은 그보다 약간 작으므로 시작 위치가 근일점이 아닌 어느 한 점 이 되고, 타원의 한쪽 끝(원일점) 근처에서 시작해 천천히 돌아 나오는 궤도가 된다. 총 적분 시간 T=30T = 30 은 한 주기보다 충분히 긴 시간이고, 그 동안 궤도가 몇 바퀴 도는 모습이 그래프에 그려진다. 닫힌 타원이라면 그 몇 바퀴 가 정확히 같은 길 위를 겹쳐 그려져야 한다 — 한 바퀴와 두 바퀴의 자취가 구별되지 않고 한 개의 타원으로만 보여야 한다.

출력의 세 보존량을 보자. EELzL_z10610^{-6} 이하의 오차로 보존되어야 하고, A\vec A 의 두 성분도 그 수준의 오차에서 변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LRL 벡터가 눈에 띄게 변한다면 — 가령 두 번째 자리가 흔들린다면 — 그건 적분기의 오차이지 LRL이 진짜로 보존되지 않는 게 아니다. 4차 RK는 심플렉틱 적분기가 아니므로 장시간 적분에서 작은 표류가 누적되고, 그 표류가 보존량 변화로 드러난다. 이 장의 검산 범위에서는 그 표류가 10610^{-6} 이하에 묶여 — 정성적 결론 모든 보존량이 보존된다 — 는 견고하게 떨어진다.

검산을 변형해 보고 싶다면 — 가속도의 거듭제곱을 살짝 바꿔 보면 좋다. accel 함수에서 r / np.linalg.norm(r)**3r / np.linalg.norm(r)**3.1 로 바꾸면 — 거듭제곱이 살짝 어긋난 거의 케플러 가 된다. EELzL_z 는 여전히 보존되지만(중심력은 여전하니까), LRL 벡터 A\vec A눈에 띄게 변한다 — 그 방향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근일점이 이동 하는 모습이 그래프에 장미꽃잎 같은 세차 궤도로 떨어진다. 정확히 1/r1/r 일 때만 닫힌 타원이라는 사실, 거듭제곱이 조금만 어긋나도 세차가 시작된다는 사실이 코드 한 줄 수정으로 손에 들어온다 — 본론 3의 결론이 식의 한 자리 숫자 의 무서운 책임이라는 점이 직접 보인다.

다음 장으로

4장: 섭동 이론에서는 적분 가능성이 깨질 때 토러스가 어떻게 부서지는지를 본다. 작은 섭동을 가했을 때 어떤 진동수 비율의 토러스가 살아남고 어떤 것이 카오스의 바다에 잠기는지 — 이것이 KAM 정리의 본론이며, 적분 가능이라는 이상화가 실제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 장에서 손에 쥔 케플러는 닫힌 타원 이라는 사실이, 그 닫힘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의 정량적 답을 듣기 위한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