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없이 「불법 사이트」가 된 아카이브 — 스페인의 Archive.today 차단
법원 없이 「불법 사이트」가 된 아카이브 — 스페인의 Archive.today 차단
웹 아카이브는 공공의 기억인가 페이월 우회 도구인가 — 그리고 그 경계를 긋는 일은 법원의 몫인가 행정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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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0일 해커뉴스 1면에 「스페인, Archive.today와 그 미러의 차단을 명령」이라는 글이 올라와 555점을 받았다. 원문은 Reclaim The Net의 보도이고, 그 보도의 출처는 스페인 통신 전문 매체 BandaAncha다.
사실관계는 짧다. 스페인 문화부 산하 지식재산위원회 제2부(Sección Segunda de la Comisión de Propiedad Intelectual)가 통신사들에 Archive.today 접속 차단을 명령했다. 차단 대상에는 본 도메인뿐 아니라 archive.is, archive.ph, archive.li 같은 미러 도메인이 포함된다. 차단은 8월 중순 일부 통신사에서 시작되어, 이후 다른 통신사로 확대되었다. 신고자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권리자이며, 결정의 형식은 법원 판결이 아니라 행정 결정이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차단 대상이 「해적 사이트」의 전형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Archive.today는 웹 페이지의 스냅샷을 저장하는 서비스이고, 기자와 연구자가 삭제되거나 수정된 페이지의 증거를 남기는 데 써 왔다. 동시에 페이월 뒤의 기사를 누구나 읽게 만드는 통로로도 쓰였다. 게다가 이 서비스는 올해 초 영어판 위키백과에서 퇴출되었는데, 그 이유는 저작권이 아니라 운영자의 행태였다.
그러니 질문은 둘로 갈라진다. 하나는 이 서비스가 차단될 만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그 판단을 이런 절차로 내려도 되는가다. 해커뉴스 토론은 이 두 질문을 자주 뒤섞었다. 이 글은 둘을 떼어 놓고 읽어 보려 한다.
법원 없는 차단 — 무엇이, 어떻게 막혔나
먼저 확인된 사실부터 정리하자. Reclaim The Net에 따르면 스페인 이용자 대부분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정부 페이지로 리디렉트된다. 그 페이지의 제목은 「ESTÁ USTED INTENTANDO ACCEDER A UN SITIO WEB ILEGAL」, 즉 「당신은 불법 웹사이트에 접속하려 하고 있습니다」다. 본문은 이 접속이 지식재산위원회 제2부의 결정으로 차단되었으며, 사유는 「지식재산권으로 보호되는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불법적으로 용이하게 했다」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어서 이용자가 접속을 시도함으로써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활동에 기여하고 있으며, 자신의 보안과 데이터와 기기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합법적인 출처를 택하면 예술 창작과 문화 상품의 개선,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고 권한다.
BandaAncha의 설명은 조금 더 기술적이다. HTTPS로 접속하면 해당 사이트는 연결 오류를 띄우고, 암호화되지 않은 HTTP로 접속했을 때만 bloqueadaseccionsegunda.cultura.gob.es라는 문화부 도메인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차단이 어느 계층에서 이뤄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다. HTTPS 트래픽은 중간에서 내용을 바꿔치기할 수 없으니 연결을 끊는 수밖에 없고, 경고 페이지는 평문 HTTP에서만 보인다. 다만 정확한 차단 방식(DNS인지, IP인지, SNI 기반인지)은 기사에서 명시되지 않았다. 해커뉴스에서 이용자 welwala는 처음엔 DNS 문제라고 생각했다가 DNS 수준만의 차단은 아닌 것 같다고 정정했는데(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이 역시 개인 관찰일 뿐이다.
차단 대상의 범위도 기사마다 결이 다르다. Reclaim The Net은 차단 도메인이 문화부가 공개하는 차단 목록(9월 11일 최종 갱신)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BandaAncha 기사는 문화부의 공식 차단 목록에 archive.fo, archive.is, archive.li, archive.md, archive.ph, archive.today, archive.vn 일곱 개 도메인이 올라 있다고 적는다. 내가 확인한 BandaAncha 기사는 9월 17일 게재, 9월 23일 갱신 판이라, 목록 반영 시점이 그 사이 어딘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 부분은 단정하지 않겠다.
절차가 핵심이다. BandaAncha에 따르면 이번 차단은 어떤 권리자가 제기한 「보호 절차(Procedimiento de Salvaguarda)」의 결과이고, 기사는 그 권리자가 「아마도 디지털 언론」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집행은 「지식재산권을 위한 프로토콜」을 통해 이뤄졌다. Reclaim The Net은 이 프로토콜이 2021년 문화부와 권리자 단체, 대형 통신사가 맺은 것으로, 기술위원회의 통지를 받으면 24시간 안에 「미러」 사이트를 차단하기로 약속한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즉 법원이 사안을 심리하고 판결하는 구조가 아니라, 행정 위원회의 결정이 사적 협약을 통해 통신사 설비에 곧바로 반영되는 구조다.
그 결과 현장의 체감은 고르지 않다. 해커뉴스에서 스페인에 산다는 이용자들의 보고가 엇갈렸다. pantulis는 Google DNS를 쓰는데 최근 몇 주간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했다고 했고, alkyon은 Vodafone 등 대형 통신사가 집행하는 것이라 소규모 지역 통신사를 쓰면 영향이 없다고 했다. otherme123은 pepephone/Orange 회선에서 차단되어 VPN을 쓰게 되었다고 했고, rhaps0dy는 며칠 전엔 막혔는데 지금은 열린다고 했다(모두 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같은 나라, 같은 시기에 이 정도로 경험이 갈린다는 것 자체가 프로토콜 참여 통신사 단위로 집행되는 차단의 성격을 보여 준다.
두 개의 아카이브, 두 개의 법적 자세
이제 왜 하필 Archive.today인가를 보자. BandaAncha는 이 서비스를 2012년부터 운영되어 온, Internet Archive의 Wayback Machine과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는 서비스로 소개한다. 법적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독립 프로젝트이고, 페이월로 보호되는 콘텐츠나 저자가 robots.txt로 거부 의사를 밝힌 콘텐츠까지 보관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공개하는 데 자주 쓰인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두 아카이브의 법적 자세 차이를 정확히 짚는다. Wayback Machine을 운영하는 Internet Archive는 스스로를 비영리 연구 도서관으로 규정한다. 도움말 센터에는 저작권 신고 창구와 별도로, 사이트 운영자가 자기 사이트의 아카이브를 web.archive.org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하는 절차가 안내되어 있다. 요청에는 대상 URL, 제외를 원하는 기간, 요청자가 해당 사이트를 관리한 기간을 적게 되어 있고, 팀이 검토하되 결과를 미리 보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Internet Archive는 출판사의 우려를 존중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공식 답변은 「그렇다, 보존과 접근과 책임 있는 관리의 균형을 위해 출판사·권리자와 협력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Wayback Machine은 권리자와 대화할 수 있는 주소와 절차를 가진 기관이다. 권리자 입장에서 불만이 있으면 차단 명령보다 먼저 쓸 수 있는 경로가 있다. Archive.today에는 그런 것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법적 실체가 불분명한 상대에게 권리자가 쓸 수 있는 수단은 결국 국가를 통해 접속 경로 자체를 끊는 것뿐이다. 이번 차단을 「검열」로만 읽으면 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권리를 주장할 상대가 없는 서비스는 차단이라는 가장 거친 도구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면이 있다.
그런데 Archive.today의 문제는 저작권에서 끝나지 않는다. 해커뉴스에서 cluckindan은 이번 차단을 환영한다며 위키백과의 Archive.today 지침 페이지를 링크했다. 그 페이지에 따르면 영어판 위키백과는 200명 넘게 참여한 의견 요청(RfC)이 2026년 2월에 종결된 뒤 Archive.today와 관련 도메인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2026년 1월 Archive.today가 방문자의 컴퓨터를 이용해 한 블로그에 분산 서비스 거부(DDoS) 공격을 하는 코드를 사이트에 넣었고, 이후 아카이브된 페이지를 조작한 증거가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지침은 그 코드가 6월 5일 시점에도 빈도만 줄인 채 남아 있다고 적는다. 6월부터는 위키미디어 전 사이트의 글로벌 스팸 블랙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RfC 종결 시점에 영어판 위키백과에는 Archive.today 링크가 72만 4,207개 있었다.
해커뉴스의 다른 코멘트들도 이 맥락을 보탰다. winkelmann은 이 사이트가 방문자를 이용해 다른 사이트를 공격했고, Cloudflare의 악성 차단 리졸버(1.1.1.2)가 해당 도메인을 막는다고 했다. rainelli는 운영자가 핀란드의 한 블로거와 갈등한 끝에 핀란드 전체에서 archive.is 접속을 막았다고 주장했고, happa는 자기 나라도 수년째 이유 없이 이 사이트에서 차단당해 왔다며 이번 조치를 반긴다고 했다(모두 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후자의 두 주장은 내가 별도로 검증하지 못했다.
여기서 두 질문이 다시 갈라진다. Archive.today가 신뢰할 만한 아카이브인가에 대해서는, 위키백과 커뮤니티가 이미 공개 토론과 증거 검토를 거쳐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의 차단 근거는 그것이 아니다. 차단 페이지가 내건 사유는 DDoS도, 스냅샷 조작도 아닌 「지식재산권 침해의 용이화」다. 운영자의 행태가 나쁘다는 사실이 이 절차의 정당성을 소급해서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해커뉴스에서 sunaookami가 「그것이 국가 차원 검열의 이유는 아니다」라는 취지로 짧게 반박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차단은 작동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는가
이 사건을 스페인의 다른 차단과 떼어서 보기 어렵다. Reclaim The Net은 하나의 위반 항목을 잡기 위해 서비스 전체를 막는 방식이 스페인에서 새롭지 않으며, 스포츠 중계를 다루는 사이트에도 같은 방법이 쓰였다고 지적한다. 해커뉴스에서는 이 연결이 가장 많이 나왔다. nickreese는 스페인에서 축구 경기 중에 Cloudflare 엣지 IP가 차단되어 간헐적 장애를 겪었고 원인을 찾는 데 오래 걸렸다고 했다. miohtama는 법원 명령에 따른 Telegram 차단과 여론 반발 뒤의 철회, 라리가 경기 중 인터넷과 Cloudflare 차단을 나열했다. nottorp는 스페인 외에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그리고 어느 정도는 영국도 축구를 이유로 차단을 한다고 주장했다(모두 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이 코멘트들은 개인의 경험담과 주장이고, 나는 각각의 사실관계를 이번 글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다만 「행정 결정에서 통신사 설비까지 24시간」이라는 파이프라인이 이미 존재하고 반복적으로 쓰인다는 점은 원문 기사와 일치한다.
효과는 어떨까. 앞서 본 것처럼 현장 보고는 「막혔다」와 「멀쩡하다」가 섞여 있다. 프로토콜에 참여한 대형 통신사 회선에서만 집행되고, 리졸버를 바꾸거나 VPN을 쓰면 우회된다는 보고도 있다. anonzzzies는 축구 차단의 경우 기술을 모르는 지인들도 동네 「인터넷 설치 기사」에게서 받은 작은 기기로 매달 몇 유로를 내고 경기를 보고 있다며, 차단이 사실상 무용하다고 했다(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이런 종류의 접속 차단은 대체로 「의지가 있는 사람은 우회하고, 의지가 없는 사람은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권리자 입장에서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페이월을 우회하려는 대다수의 가벼운 클릭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완벽한 차단은 필요 없다.
문제는 비용이 어디에 떨어지는가다. 첫째,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축구 차단 사례가 보여 주듯 IP 단위 차단은 같은 인프라를 쓰는 무관한 사이트를 함께 떨어뜨린다. 둘째, 이용자에게 「당신은 범죄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 주는 일이 법원의 판단 없이 이뤄진다. 해커뉴스에서 mitxela는 법원이 관여하지 않았으니 이용자가 불법 사이트에 접속한다는 고발 자체가 부당하다고 꼬집었다(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법적으로 그 표현이 어떻게 평가될지는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지만, 행정 절차가 시민을 향해 「범죄」라는 단어를 쓰는 데 드는 문턱이 낮다는 관찰은 유효하다.
셋째, 그리고 가장 장기적인 비용은 웹 아카이빙 생태계 전체에 대한 압박이다. Internet Archive의 도움말 센터에는 「출판사의 Wayback Machine 차단」에 관한 FAQ가 따로 있다. 거기에 따르면 Nieman Lab이 2026년 1월 일부 언론사가 AI 스크래핑 우려를 이유로 Wayback Machine의 보존과 접근을 막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FAQ는 Pew Research Center의 2024년 조사를 인용해 2013년의 웹 페이지 중 38%가 10년 뒤 접근 불가였다고 적고, Internet Archive의 내부 분석으로는 그렇게 사라진 페이지의 약 15%를 Wayback Machine이 보존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Wayback Machine 책임자 Mark Graham은 Wayback Machine이 AI 기업과 출판사 사이 분쟁의 「부수적 피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 그림은 이렇다. 권리자는 한편에서 법적 주체가 있는 아카이브를 robots.txt와 크롤러 차단으로 밀어내고, 다른 한편에서 법적 주체가 없는 아카이브를 국가 차단으로 밀어낸다. 둘 다 각자의 논리로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두 흐름이 합쳐지면, 「누군가 그 시점에 그 페이지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증명해 주는 제3자」의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해커뉴스에서 sharktheone은 Archive.today가 가동 시간뿐 아니라 무엇을 수집하는가의 측면에서도 Wayback Machine의 중복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직접 인용은 아니고, 코멘트의 요지를 요약). 아이러니하게도 해커뉴스 스레드의 첫 코멘트는 원문 기사의 archive.is 링크였고, 스페인의 한 이용자는 그 링크에서 502 Bad Gateway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결론
이 사건에는 쉬운 편이 없다. Archive.today는 페이월과 robots.txt를 무시하며 수집하고, 법적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며, 위키백과 커뮤니티의 공개 검토에서 방문자의 브라우저로 DDoS를 하고 스냅샷을 조작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런 서비스를 공공의 기억을 맡길 인프라로 옹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스페인의 절차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권리자의 신고, 행정 위원회의 결정, 그리고 통신사가 24시간 안에 이행하기로 미리 약속한 사적 프로토콜. 이 경로에는 서비스 측의 반론도, 공개 심리도, 독립된 판단자도 없다. 이번 대상이 평판 나쁜 사이트였다는 사실은 다음 대상이 무엇일지에 대해 아무것도 보증하지 않는다. 위키백과가 같은 서비스를 몰아낸 방식, 즉 200명 넘는 참여자의 공개 토론과 증거 검토와 종결 성명은, 적어도 절차의 측면에서는 정부보다 나은 선례를 남겼다.
웹 아카이브를 공공의 기억으로 지키고 싶다면, 필요한 것은 Archive.today를 옹호하는 일이 아니라 Wayback Machine처럼 주소와 절차를 가진 아카이브가 권리자와 AI 분쟁 사이에서 짓눌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가 무엇을 「불법 사이트」라 부를 때, 그 판단이 어떤 문을 거쳐 나왔는지를 계속 묻는 일이다. 당신이 오늘 인용한 링크는, 10년 뒤 누가 대신 기억해 줄 것인가.
(10월 17일 추기: 위키백과 Archive.today 지침 페이지에 따르면, 2026년 10월 17일 기준 영어판 위키백과의 문서 이름공간에서 클릭 가능한 Archive.today 링크는 456개로 줄었다. 인용 템플릿이 해당 URL을 숨기는 방식으로 처리한 결과다.)
출처:
- https://reclaimthenet.org/spain-blocks-archive-today-and-mirrors
- https://bandaancha.eu/articulos/archive-today-pasa-ser-web-ilegal-espana-11923
- https://en.wikipedia.org/wiki/Wikipedia:Archive.today_guidance
- https://help.archive.org/help/how-do-i-request-to-remove-something-from-archive-org/
- https://help.archive.org/help/faq-publishers-blocking-the-wayback-machine/
-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49772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