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 것인가 — 다음 책장
어디로 갈 것인가 — 다음 책장
두 권에 걸쳐 따라온 작용 원리라는 한 가닥 줄기를 한 화면에 모아두고, 그 줄기에서 갈라져 나가는 세 개의 문을 가리키는 닫음의 장.
들어가며
여기까지 함께 와준 독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 장은 새로운 정리를 하나 더 끼워 넣는 자리가 아니다. 두 권의 책이 사실은 한 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한 페이지에 펼쳐 보이고, 책장을 덮은 다음 어디로 손을 뻗으면 좋을지 짧게 짚는 자리다.
지금까지 이 책의 매 장은 같은 모양으로 진행됐다. 들어가며에서 그 장의 질문을 던지고, 본론에서 식을 세우고, 파이썬으로 그 식을 손가락 끝에 올려 보고, 다음 장으로 가는 다리를 놓았다. 마지막 장도 같은 형식을 따른다 — 다만 마지막 다리는 다음 장이 아니라 다음 책 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 책이 한 권으로 정해지지 않고 세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이 장은 세 개의 문 을 차례로 가리키는 형태가 됐다. 어느 문으로 갈지는 독자의 몫이지만, 어느 문을 고르더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도구로 그 문을 열 수 있다 는 사실은 이 장에서 확실히 못 박아 두려 한다.
그래서 이 장의 본론은 셋으로 갈린다. 첫째 본론에서는 두 권에 걸쳐 우리가 쌓아 올린 줄기를 한 단락씩 다시 호명한다 — 매 장의 주요 결과를 한 줄씩 불러 모아, 흩어진 점들이 사실은 한 가닥의 직선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한눈에 보이게 한다. 둘째 본론에서는 그 줄기를 단 네 칸짜리 도식으로 압축한다. 셋째 본론에서는 그 도식 너머로 갈 수 있는 세 개의 문을 가리키고, 각 문에 대해 왜 그 책이 다음 책인지를 한 줄로 적는다. 마지막으로 파이썬 셀 하나가 두 권의 마지막 디딤돌 — 드브로이 파장의 수치 — 을 손에 쥐여 주고, 마치며 절이 책을 덮는다. 형식은 익숙하지만 톤은 한 번도 적어 보지 않은 톤이다 — 닫음의 톤이다.
본론 1 — 우리가 쌓아 올린 한 줄기
I권은 뉴턴이 위에 적어 둔 운동방정식에서 출발했다. 좌표 변환에 약한 그 식을 매끄러운 다양체(manifold) 위로 옮기고, 라그랑지안 한 함수에서 작용
를 만들고, 그것이 정류점이 되는 조건으로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을 끄집어냈다. 거기서 뇌터(Noether) 가 대칭과 보존량을 묶었고, 다양체 위의 해밀턴 흐름이 그 그림을 한 번 더 정리해 주었다. I권의 줄기를 한 줄로 다시 호명하면 이렇게 된다 — 0장에서 다양체와 미분형식, 1장에서 라그랑지안, 2장에서 변분 원리, 3장에서 뇌터, 4·5장에서 해밀턴과 정준 변환, 6장에서 푸아송 괄호. 그 모든 장이 사실은 같은 풍경을 점점 더 좌표 독립적인 언어로 다시 적는 일 이었다는 것이 I권의 결론이었다.
II권은 그 골격을 그대로 끌고 더 멀리 갔다. 1·2·3장에서는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을 하나의 단일 편미분방정식 으로 적었고, 적분가능계의 토러스 위의 운동을 작용–각 좌표 로 풀었다 — 복잡해 보이던 타원 운동이 한 좌표계 갈아 끼우기로 수평 직선 이 되는 광경이었다. 4장에서 KAM이 그 그림의 깨짐 을 다뤘다 — 작은 섭동에는 충분히 무리수적인 진동수 비를 가진 토러스가 살아남지만, 큰 섭동에서는 부서지고 카오스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정리였다. 5·6·7장에서는 라그랑지안을 입자에서 장으로, 그리고 상대론적 4-벡터 위로 끌고 올라갔다 — 끈 한 줄의 라그랑지안 밀도 , 클라인–고든 장의 , 그리고 장 뇌터 정리(에너지–운동량 텐서 의 보존)가 차례로 등장했다. 8·9장에서는 같은 작용 를 가중치 로 묶어 모든 경로 위에 더하는 경로적분(path integral)으로 변환했고, 자유입자의 전파인자 가 손으로 닫히는 광경까지 갔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II권의 매 장이 I권 어느 장의 수직 연장 임을 알 수 있다. 해밀턴–야코비는 정준 변환의 극한, KAM은 적분가능계의 섭동, 장이론은 라그랑지안의 무한 자유도 일반화, 상대론은 변분 원리의 로런츠 공변화, 경로적분은 작용 원리의 양자적 재해석이다. 그러니까 II권은 새로운 원리 를 추가한 책이 아니라, 같은 변분 원리를 여러 방향으로 끝까지 밀어 본 책이다. 변분 원리는 두 권 전체의 척추 — 다른 모든 것은 그 위의 살이다. 그 한 문장이 두 권의 진짜 내용이고, 이 책의 나머지는 그 문장을 손가락 끝에서 만질 수 있게 만들기 위한 보조 장비였다.
이 일관성 — 한 원리가 여러 무대에서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는 것 — 은 사실 물리학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뉴턴의 도 여러 모자를 쓰지만, 점입자에서 강체로, 강체에서 연속체로 옮겨갈 때마다 식의 형태 자체가 바뀐다. 반면 작용 원리는 형태를 유지한다 — 한 줄이 점입자에서 장으로, 비상대론에서 일반상대론으로, 고전에서 양자로 그대로 옮겨간다. 바뀌는 것은 작용 안의 라그랑지안 한 줄뿐 이다. 이론을 새로 만든다는 일이 어떤 일인지에 대한 가장 짧은 답이 이 한 문장이고, 그 답을 손에 쥐고 다음 책으로 가는 것이 이 두 권의 가장 큰 선물이다.
이 줄기에서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점은, 같은 식이 다른 모자를 쓰고 여러 번 등장했다 는 사실이다. 작용 는 I권에서는 정류점을 찾는 함수형이었고, II권 2장에서는 시간을 끝점으로 본 함수 — 해밀턴 주함수 — 가 되었으며, 3장에서는 작용–각 좌표의 각변수의 생성함수 가 되었고, 9장에서는 양자 진폭의 위상 으로 다시 나타났다. 같은 글자가 매번 약간 다른 모양으로 등장하지만, 그 모든 등장이 결국 경로에 매겨지는 한 개의 실수 라는 원형으로 환원된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한 글자가 한 권에서 그렇게 여러 얼굴을 가질 줄 몰랐다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에는 그 얼굴들이 한 사람의 표정이라는 것이 보일 것이다.
본론 2 — 두 줄의 도식
L(q, q̇) → S = ∫L dt → e^{iS/ℏ} → ⟨x_f | x_i⟩
고전 양자 진폭(전파인자)
이 한 줄 도식이 보기보다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왼쪽 끝은 I권 1장의 출발점, 오른쪽 끝은 9장의 도착점이다. 가운데 두 칸은 작용 원리(고전)와 경로적분(양자)을 잇는 다리다. 학부 1·2학년 수업에서 이 네 칸을 한 화면에 띄워 놓고 강의를 시작했더라면 두 권의 책이 한 학기 분량으로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두 권의 책을 통해 한 일은 결국, 이 네 칸 사이의 세 화살표 가 각각 어떤 작업이고 어떤 가정이 필요하며 어떤 일반화를 허락하는지를 한 화살표씩 천천히 풀어낸 것이다.
화살표를 하나씩 풀어 읽으면 이렇다. 첫 화살표 는 라그랑지안을 시간에 대해 적분하는 일 — 한 순간의 정보 에서 한 경로 전체 의 정보 로 옮겨가는 단계다. 한 점의 양에서 한 곡선의 양으로 차원이 올라간다고 생각해도 좋다. 두 번째 화살표 는 고전과 양자를 나누는 단 한 번의 결단이다. 고전역학은 가 정류점이 되는 경로 하나 만 살린다. 양자역학은 그 경로 하나에 머물지 않고, 모든 경로에 가중치 를 붙여 합한다 — 극한에서 정류점 근처가 압도적으로 살아남으면서 고전 경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정류 위상 근사). 양자에서 고전이 떨어지는 가장 깨끗한 다리가 바로 이 화살표 한 개다. 세 번째 화살표 는 모든 경로 위에서의 함수 적분 의 결과를 진폭 한 개로 묶어내는 단계다. 진폭의 절댓값 제곱이 확률을 준다는 보른 규칙은 이 줄의 마지막에서 다시 등장한다.
이 다리가 실제 수치 계산이 되는 가장 깨끗한 예가 격자 양자색역학(lattice QCD) 이다 — 시공간을 격자로 잘게 자르고 작용을 (대개 가상시간으로) 이산화해서 형태의 적분을 컴퓨터가 직접 평가한다. 두 권의 책에서 우리가 만지작거린 바로 그 줄기를, 슈퍼컴퓨터가 수십만 자유도 위에서 그대로 굴리고 있는 셈이다. 양성자의 질량이 쿼크와 글루온의 상호작용에서 어떻게 떨어지는지를 1% 정밀도로 예측하는 일이 이 적분 한 줄에서 직접 나온다. 9장에서 자유입자 한 개의 전파인자를 손으로 닫은 그 계산의 수십만 차원 버전 이 슈퍼컴퓨터 위에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줄기는 같다.
한 가지 더 — 격자 QCD의 실제 계산은 그대로가 아니라 유클리드화 한 가중치 위에서 이뤄진다. 진폭이 진동하는 적분은 몬테카를로로 직접 평가하기가 어렵지만, 가상시간으로 옮긴 가중치는 양의 실수 라서 표본 추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문단의 통계역학 이야기는 lattice QCD 와 같은 출입구를 공유한다.
같은 다리가 통계역학에서는 분배 함수 로 나타난다. 여기서 는 유클리드 작용 — 시간을 허수 로 회전(Wick 회전)한 다음 적은 작용이다. 이 한 번의 회전으로 양자역학의 진폭 가 통계역학의 볼츠만 가중치 로 둔갑한다 — 두 분야가 사실은 같은 적분의 두 얼굴이라는, 책장 너머의 통찰이 이 한 줄의 회전에 들어 있다. 분배 함수가 결정하는 양은 자유에너지, 비열, 자기화율 같은 열역학적 양 이지만, 그 적분의 모양 은 양자역학의 경로적분과 한 글자 차이일 뿐이다. 일반상대론의 아인슈타인–힐베르트 작용 , 게이지 이론의 양–밀스 작용 도 같은 도식의 일원이다. 시공간이 휘는 일도, 글루온이 색을 바꾸는 일도, 같은 종류의 도식 안에서 서로 다른 라그랑지안 한 줄만 갈아 끼우면 적힌다. 작용을 적으면 이론이 정해진다 — 현대물리의 가장 짧은 슬로건 한 줄이다.
본론 3 — 세 개의 문
책을 덮은 다음 향할 수 있는 길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 두 권의 작용–해밀턴 골격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은 다음 셋이다.
심플렉틱·접촉 기하학(symplectic / contact geometry). 해밀턴 역학을 현대 수학의 언어로 다시 적어 주는 분야다. 위의 표준 2-형식 가 주인공이고, 정준 변환은 이 형식을 보존하는 사상(symplectomorphism)으로 정의된다. I권에서 푸아송 괄호가 떠받친 구조, II권에서 작용–각 변수가 살았던 무대가 모두 심플렉틱 다양체 라는 한 단어로 정돈된다. 접촉 기하학은 그 한 차원 위의 친척으로, 시간이 함께 들어간 확장 위상공간 의 구조를 다룬다 — 해밀턴–야코비 방정식이 가장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무대다. 다음 책으로는 아놀드(V. I. Arnold)의 Mathematical Methods of Classical Mechanics 가 가장 깨끗한 다리다 — I·II권에서 본 모든 도구가 미분기하의 언어로 다시 정돈되어 있고, 리우빌–아르놀트 정리(II권 3장에서 결과만 호명한 그 정리)의 엄밀한 증명도 거기 있다. 책의 마지막 부록에서 KAM 정리의 증명 스케치까지 따라가는 독자는, II권 4장에서 그림으로만 봤던 그 깨짐의 정확한 모양을 직접 손에 쥐게 된다. 이 문으로 가려면 미분형식과 외미분에 한 번 더 익숙해지면 좋다 — I권 0장에서 깐 그 토대를 한 단계 더 깊이 파면 그대로 입장권이 된다.
플로어 이론·미러 대칭(Floer theory, mirror symmetry). 심플렉틱 기하가 대수기하와 만나는 자리. 위상적으로 견고한 위상공간의 불변량을 만들어 내며, 끈 이론과 수학적 물리의 깊은 지층으로 연결된다. 아놀드 추측 — 해밀턴 함수의 임계점 개수에 대한 위상적 하한 — 같은 결과가 이 문 안쪽에 있다. 플로어 호몰로지는 경계가 해밀턴 방정식의 해인 J-홀로모픽 곡선 을 세고 그것을 호몰로지로 정돈하는, 변분 원리의 가장 현대적인 화신 중 하나다 — 두 권의 책에서 본 작용을 정류시킨다 는 발상이 위상 불변량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 밀고 올라간다. 미러 대칭은 또 다른 결을 가진다 — 두 개의 서로 다른 칼라비–야우 다양체가 한쪽의 심플렉틱 정보(A-모형)와 다른 쪽의 복소 구조 정보(B-모형)를 교환한다는, 끈 이론에서 발견되어 수학으로 옮겨간 깊은 대응이다. 두 권의 책에서 본 작용 원리가 여기서는 시그마 모형의 작용 으로 등장하고, 그 작용의 위상학적 부분이 미러 대칭의 한쪽 변을 결정한다. 처음 도전한다면 매캐덕–살라몬(McDuff–Salamon)의 Introduction to Symplectic Topology 가 입구다. 이 책이 입구로 좋은 이유는, 심플렉틱 기하의 고전적 결과 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다음에야 플로어 호몰로지의 현대적 정의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문으로 가려면 대수위상(특히 호몰로지·코호몰로지)과 복소다양체의 기초가 더 필요하다 — 두 권의 책으로 직접 가기에는 한 걸음 더 멀지만, 왜 그쪽으로 가는지에 대한 동기는 이미 충분히 손에 쥐고 있다.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 9장에서 본 의 가장 강력한 사용처. 입자물리 쪽 표준 텍스트는 페스킨–슈뢰더(Peskin & Schroeder)의 An Introduction to Quantum Field Theory 다 — 파인만 도형을 그리고 단면적을 계산하고 재규격화군을 다루는 실용서 의 성격이 강하다. 책 한 권을 끝내면 표준모형의 단면적을 한 번은 직접 계산해 본 셈이 되고, 입자물리 논문의 그림이 어떤 의식 위에서 그려지는지 손가락에 익는다. 더 기초적인 시각, 그러니까 왜 장 양자화가 그런 모양일 수밖에 없는가 를 끝까지 따지는 책은 와인버그(Weinberg) 1권 The Quantum Theory of Fields 다. 와인버그의 출발점은 로런츠 대칭과 양자역학의 공리만 받아들이면 장 이론이 거의 유일하게 결정된다 는 관점이다 — II권 6장의 로런츠 공변 라그랑지안이 사실은 발견 이 아니라 대칭의 강제 라는 시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두 권의 책에서 본 작용 원리가 양자화 이후에도 그대로 살아남는 광경을 가장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문으로 가려면 비상대론적 양자역학(슈뢰딩거 방정식, 조화진동자, 각운동량 대수) 한 학기와 특수상대론(II권 6장 정도면 충분)이 더 필요하다. 두 권을 끝낸 독자라면 작용을 적고 그것을 양자화하는 발상 자체에는 이미 익숙하므로, 책에서 가장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첫 100쪽을 다른 독자보다 훨씬 가볍게 통과할 수 있다.
이 세 문 사이에 우열은 없다. 수학적 엄밀함이 좋은 독자는 첫 번째 문으로, 기하학과 위상이 좋은 독자는 두 번째 문으로, 입자물리와 우주가 좋은 독자는 세 번째 문으로 가면 된다. 그리고 어느 문을 고르든, 작용을 적는 일 이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 문이 사실은 서로 통한다는 점도 일러 둘 만하다 — 양자장론의 경로적분은 심플렉틱 기하의 무한차원 일반화로 다시 적힐 수 있고, 플로어 이론은 양자장론(위상 시그마 모형)의 수학적 결과로 떨어진다. 처음에는 세 문을 따로따로 열어 보겠지만, 한참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다시 같은 변분 원리가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권을 따라온 독자에게 그 만남이 새삼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가짐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인다. 새 책을 펼치면 첫 50쪽쯤은 익숙한 듯 낯선 표기와 부딪힌다 — 가 진동수가 아닌 2-형식이 되고, 가 위상이 아닌 장 변수가 되고, 가 작용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 50쪽을 통과 했다면, 다음 200쪽은 두 권의 책에서 이미 본 그림의 새 옷에 가깝다. 첫 50쪽에서 책을 닫지 않는 것 — 그 한 가지만 마음에 새기면, 어느 문을 골라도 충분히 멀리 갈 수 있다.
파이썬으로 확인
마지막으로, 새로운 물리 없이 한 번만 더 손가락을 움직여 보자. 운동에너지 1 eV짜리 전자의 드브로이 파장 를 계산한다. 는 플랑크 상수, 는 전자 질량, 1 eV 는 SI로 환산되는 에너지다.
import numpy as np
h = 6.626e-34 # 플랑크 상수 (J·s)
m_e = 9.109e-31 # 전자 질량 (kg)
eV = 1.602e-19 # 1 eV 를 줄로 환산
E_kin = 1.0 * eV # 운동에너지 1 eV
p = np.sqrt(2 * m_e * E_kin) # 비상대론적 운동량
lam = h / p # 드브로이 파장 (m)
print(f"p = {p:.3e} kg·m/s")
print(f"λ_dB = {lam*1e9:.3f} nm")
# 1 eV 의 전자는 원자 간격에 필적하는 파장을 가진다 — 양자화학으로 가는 다리.
코드의 흐름을 짚자. 단위는 모두 SI로 맞췄다. eV 한 줄이 전자볼트를 줄(J)로 환산해 주고, E_kin = 1.0 * eV 가 운동에너지를 정의한다. 비상대론적 관계 을 운동량에 대해 풀면 — np.sqrt 한 줄이 그것이다. 운동에너지 1 eV 가 전자의 정지에너지 keV에 비해 압도적으로 작으므로 비상대론적 근사가 정확하다는 점도 짚어 두자(상대론 보정은 수준). 마지막으로 드브로이 관계 가 파장을 준다. 이 관계는 양자역학의 첫 페이지에 적히는 식이지만, II권 9장의 경로적분에서 위상 의 공간적 주기로도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 자유입자의 경로적분에서 위상은 이므로 한 주기가 다. 그러니까 이 한 줄의 계산은 사실 이 두 권 내내 따라온 줄기의 수치적 끝점 이다.
출력은 약 nm. 원자 간 결합 길이(0.1 nm 안팎)와 비교하면 한 자릿수 큰 정도다. 이 한 자릿수 차이가 물리 다 — 1 eV의 전자는 원자 한 개를 볼 정도의 공간 해상도를 가지지 못하지만, 원자 사슬의 주기 구조 는 충분히 느낀다. 그것이 X선 회절(파장 0.01–1 nm)과 전자 회절(전자 에너지를 키우면 파장이 짧아진다)이 결정 구조를 보는 원리이고, 전자현미경(가속전압 수십 kV → 파장 수 pm)이 원자 한 개를 분해해 보는 원리다. 양자화학에서 분자 궤도가 이런 모양으로 펴지는 이유, 고체물리에서 브릴루앙 영역이 등장하는 이유 모두 이 한 자릿수 차이에서 시작한다. 거꾸로, 운동에너지가 한 자릿수 올라가면 파장은 그 제곱근만큼 짧아진다 — 100 eV의 전자는 약 0.12 nm, 10 keV의 전자는 약 12 pm. 가속전압을 키우는 그 한 손잡이가 곧 공간 해상도 의 손잡이라는 것이 드브로이 한 줄에서 그대로 떨어진다. 이 숫자 하나가 두 권 내내 우리가 따라온 다리 — 작용 원리에서 시작해 를 거쳐 물질파에 도달하는 다리 — 의 마지막 디딤돌이다.
마치며
처음 I권 1장의 라그랑지안 한 줄을 적었을 때, 그 한 줄이 II권 9장의 경로적분과 같은 식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책이 덜 두꺼워 보였을 것이다. 두 권의 진짜 목표는 그 사실 — 같은 변분 원리가 입자에서 장으로, 비상대론에서 상대론으로, 고전에서 양자로 옮겨가도 살아남는다는 사실 — 을 손가락 끝으로 만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매 장의 파이썬 셀이 거기에 봉사했다. 식 한 줄을 적고, 그 식의 결과를 화면 위 그림이나 숫자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그 작은 의식이 모이면, 어느 순간 추상적인 정리 가 아니라 내 손에 잡히는 도구 로 바뀐다. 그 변환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독자라면, 다음 책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새 도구를 자기 손에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쉬운 풀이 두 권을 쓰는 동안 가장 신경 쓴 점은, 식의 모양 보다 식이 거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를 한 단락씩 풀어내는 일이었다. 르장드르 변환이 왜 부호를 그렇게 잡는지, 작용–각 좌표가 왜 로 정의되는지, KAM에서 왜 디오판틴 조건 이라는 무리수성이 등장하는지, 경로적분에서 왜 자유입자의 측도가 라는 묘한 인자를 달고 나오는지 — 매 장에서 이런 질문을 한 번씩은 정면으로 다루려 했다. 그런 이유 의 단락이 한 번이라도 “아 그래서 그 식이었구나” 하는 순간을 만들어 냈다면, 이 두 권의 가장 큰 욕심은 이루어진 셈이다. 식은 책에서 베껴 적을 수 있지만, 이유는 납득 으로만 옮겨진다 — 그 납득의 순간만큼은 책이 함께 만들어 주려 했다.
만약 이 책이 그 다리를 한 번이라도 같이 건너 준 책으로 기억된다면, 저자로서는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다음 책장에서 어느 문을 고르든, 이미 가지고 있는 도구가 거기서도 통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놀드의 첫 장이 다양체와 미분형식으로 시작할 때 그 언어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페스킨–슈뢰더의 첫 장이 클라인–고든 장의 라그랑지안 밀도를 적을 때 그 식은 II권 6장에서 이미 본 식이다. 매캐덕–살라몬이 심플렉틱 형식 를 정의할 때 그 형식은 I권 6장의 푸아송 괄호 뒤에 숨어 있던 구조다. 와인버그가 자유 클라인–고든 장의 모드 전개를 적을 때 그 합 안의 각 모드 가 사실은 I권에서 푼 조화진동자 한 개라는 것은 II권 9장에서 이미 본 사실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다음 책의 첫 페이지의 절반쯤은 이미 적어 둔 셈이다. 그 정도면 한 권의 책이 할 수 있는 일로는 나쁘지 않다.
한 가지 더 정직하게 적고 싶은 것이 있다. 두 권의 책은 완결 이 아니다. 매 장에서 정성껏 풀어내려 했지만, 분량의 한계로 결과만 호명하고 지나간 정리가 여럿이고, 각주로 넘긴 미묘한 가정도 적지 않다. 리우빌–아르놀트 정리의 엄밀한 증명, KAM의 디오판틴 조건이 측도-1로 살아남는 이유, 경로적분의 측도가 잘 정의되는 조건 같은 기술적인 깊이 들은 본문에서 다리만 놓고 통과했다. 그 다리를 다시 건너 가서 튼튼히 만드는 일이 다음 책들의 일이고, 이 책은 그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책에 가깝다. 두 권을 끝낸 독자라면, 어느 다리가 더 손보고 싶은지에 대해 자기 나름의 감각이 생겼을 것이다. 그 감각이 다음 책장에서 가장 든든한 안내자다.
두 권을 쓰면서 가장 자주 떠올린 독자상은, 학부 1·2학년 때의 자신이었다. 처음 라그랑지안이 적힌 칠판 앞에서 왜 운동에너지에서 위치에너지를 빼는지 한 학기 내내 마음에 걸렸던 기억, 해밀턴 방정식의 부호를 매번 헷갈리던 기억, 푸아송 괄호의 항이 둘인지 셋인지 매 시험마다 다시 확인하던 기억 — 그런 자잘한 걸림 들 하나하나를 풀어 주고 싶었다. 쉬운 풀이라는 부제가 가리키는 것은 식이 쉽다는 뜻이 아니라, 식 앞에서 걸리지 않게 도와준다는 뜻에 더 가깝다. 그 도움이 한 번이라도 실제로 작동했다면, 그 한 번이 이 책의 가장 작지만 가장 진한 보람이다.
한참 후에 어느 논문 앞에서, 혹은 어떤 강의 슬라이드 앞에서 “아, 이건 작용을 정류시킨 거구나” 라고 한 번이라도 혼잣말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이 두 권은 제 몫을 다한 셈이다. 두 권을 통틀어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 셋을 꼽으라면 작용, 대칭, 경로 였을 것이다 — 그 셋이 어느 분야에서든 다시 만나는 단어들이다. 다음 책에서 그 셋 중 하나가 다른 글자 아래에 숨어 있는 모습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곧 이 두 권이 다음 책으로 흘러 들어간 흔적이다. 책장을 덮는 손에 가벼운 무게가 한 번 실리기를 바란다 — 끝났다는 무게가 아니라, 다음 책으로 옮겨갈 준비가 끝났다는 무게다. 좋은 여행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