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스크래핑, 다른 심판 — 스워츠와 메타가 드러낸 법의 비대칭

개인이 학술 데이터베이스에서 대량으로 논문을 내려받으면 최대 35년형으로 기소되고, 기업이 그보다 몇 자릿수는 많은 저작물을 삼켜 AI를 학습시키면 “변형적 이용”으로 면책된다. 스크래핑을 가른 것은 행위 그 자체였는가, 아니면 그 행위를 한 자의 크기였는가.

도입

curiousquail이라는 블로그에 올라온 한 편의 분노에 찬 글이 해커뉴스(Hacker News) 상단에 올랐다. 제목은 길고 노골적이다 — “RSS의 공동 창시자가 메타(Meta)가 별 처벌 없이 하고 있는 일 때문에 기소된 것에 나는 또 화가 난다.” 글쓴이의 논지는 단순하다. 학술 논문을 대량으로 내려받았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최대 35년형과 100만 달러 벌금이라는 위협을 받았던 애런 스워츠(Aaron Swartz)와, 저작권이 있는 책 수만 권을 불법 복제해 AI를 학습시키고도 사실상 무사한 메타를 나란히 놓으면, 법이 개인과 거대 기업에 얼마나 다르게 작동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 글 자체는 검증된 보도가 아니라 한 개인의 의견 글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인용하는 두 사건 — 2011년의 미국 정부 대(對) 스워츠 사건과 2025년의 카드리 대(對) 메타(Kadrey v. Meta) 판결 — 은 각각 실제로 존재하고, 공개 기록으로 확인된다. 이 글은 먼저 그 두 사건의 사실관계를 출처에 근거해 나란히 정리하고, 다음으로 왜 같은 종류의 대량 수집이 이토록 다르게 심판받는지를 미국 반접근법(CFAA)의 구조와 권력의 비대칭에서 찾은 뒤, 마지막으로 이 비대칭이 오픈 웹과 연구자, 소규모 개발자에게 남기는 위축효과를 짚는다. 감정적 대비는 글쓴이의 것이되, 그 감정이 근거 없는 과장인지 아니면 구조가 실제로 그렇게 짜여 있는지는 사실로 따진다.

두 개의 다운로드, 두 개의 결말

먼저 스워츠 쪽 사실이다. 애런 스워츠는 RSS 규격 초기 표준의 공동 저자이자 Creative Commons 기술 설계와 Reddit 초기 개발에 관여한 프로그래머·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 검찰과 공개 기록에 따르면, 그는 2010년 가을 무렵부터 MIT 캠퍼스 네트워크를 이용해 학술 데이터베이스 JSTOR에서 논문을 대량으로 내려받았다. 그 규모는 약 480만 편, JSTOR 소장 자료의 약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됐다. curiousquail 글은 이를 약 70기가바이트로 표현했는데, 편수와 용량은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기소는 단계적으로 무거워졌다. 2011년 7월 대배심은 그를 전신사기(wire fraud) 1건과 컴퓨터사기법(Computer Fraud and Abuse Act, 이하 CFAA) 위반 3건 등 4개 중죄 혐의로 기소했다. 이듬해 2012년 9월의 추가 기소(superseding indictment)에서 혐의는 13개 중죄로 불어났다 — 전신사기 2건, 컴퓨터사기 5건, 보호된 컴퓨터로부터의 정보 부정 취득 5건, 보호된 컴퓨터의 무모한 훼손 1건이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최대 형량은 징역 35년, 보호관찰 3년, 벌금 최대 100만 달러로 알려졌다. 다만 이 “35년”은 각 혐의의 법정 최고형을 단순 합산한 이론적 상한이라는 점은 정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검찰이 제시한 유죄 인정 협상(plea)에서는 6개월 수준의 수감이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목할 대목은 피해 당사자로 지목된 기관들의 태도다. JSTOR는 스워츠와 민사적으로 합의하고 형사 소추를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연방 검찰은 소추를 밀고 나갔다. MIT는 적극적으로 소추를 반대하지 않은 채 중립을 지켰고, 훗날 대학 스스로가 의뢰한 보고서에서 그 소극적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결말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스워츠는 재판을 앞둔 2013년 1월 1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26세였다. 그의 죽음 이후 CFAA의 모호한 조항을 손보자는 “애런법(Aaron’s Law)”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제 메타 쪽이다. 카드리 대 메타 사건에서 소설가 리처드 카드리(Richard Kadrey)를 비롯한 13명의 저자는, 메타가 자사 대규모 언어모델 라마(Llama) 학습을 위해 이른바 “그림자 도서관(shadow library)” — LibGen 같은 불법 복제 저작물 아카이브 — 에서 책을 내려받았다며 저작권 침해로 제소했다. curiousquail 글은 그 규모를 81.7테라바이트 이상으로 적었는데, 이 수치는 소송 과정에서 공개된 문서를 근거로 여러 매체가 보도한 값이다. 스워츠가 다뤘다는 용량과 단순 비교하면 대략 천 배 규모다.

판결의 향방은 스워츠 사건과 극적으로 갈렸다. 2025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빈스 차브리아(Vince Chhabria) 판사는 라마 학습에 저작물을 사용한 행위에 대해 메타의 손을 들어주는 약식판결(summary judgment)을 내렸다. 책을 통계적 패턴으로 바꿔 이메일 초안·번역·코드 작성 등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학습은 “고도로 변형적(highly transformative)“이며, 상업적 동기가 그 변형성을 압도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다만 이 판결에는 두 개의 무거운 단서가 붙는다. 첫째, 판사는 원고들이 시장 침해(market dilution)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결정적 이유로 들며, “이 판결은 메타의 저작물 이용이 적법하다는 명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원고들이 잘못된 주장을 폈고 옳은 주장을 뒷받침할 기록을 만들지 못했다는 명제를 세울 뿐”이라고 못박았다. 둘째, 불법 복제본을 획득·배포한 행위와 관련된 청구는 별도로 남겨 두었다. 즉 “학습은 변형적이라 괜찮다”와 “불법 복제 자체는 별개 문제다”가 한 판결 안에 공존한다.

‘허가받은 접근’이라는 회색지대

같은 대량 수집이 왜 이렇게 다르게 심판받는가. 첫째 축은 두 사건이 딛고 선 법이 애초에 다르다는 데 있다. 스워츠를 겨눈 CFAA는 “허가 없이(without authorization)” 또는 “허가된 접근 권한을 넘어서(exceeds authorized access)” 컴퓨터에 접근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문제는 이 “허가”의 경계가 법문상 극도로 모호하다는 점이다. 웹사이트 이용약관을 위반한 스크래핑이 곧 “허가 없는 접근”인가? 대학이 열어 둔 네트워크에서 접근 자체는 허용됐으나 다운로드 양이 과도했다면 그것은 “권한을 넘어선” 것인가? 이 모호함이 검찰에 광범위한 재량을 쥐여 준다.

이 모호함은 이후 법원에서 점차 좁혀졌다. 202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밴 뷰런 대 미국(Van Buren v. United States) 판결에서 “허가된 접근 권한을 넘어서”라는 문구를 좁게 해석해, 접근 자체가 허용된 정보를 부적절한 목적으로 이용한 것만으로는 CFAA 위반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 제9순회항소법원은 hiQ 대 링크드인(LinkedIn) 사건에서,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데이터를 스크래핑하는 것은 CFAA가 말하는 “허가 없는 접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다시 말해, 스워츠가 기소되던 2011~2012년의 CFAA 해석 지형은 오늘보다 훨씬 검찰에 유리했다. 같은 행위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재단된다는 사실 자체가, 법의 잣대가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둘째 축은 규모·권력·변호 자원의 비대칭이다. 해커뉴스 토론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지적은, 이것이 “법의 평등한 적용”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적 집행(selective enforcement)“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HN 토론에서는 만약 법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문제로 여겨 분노했을 것이라는 취지의 지적이 나왔다. 또 다른 참여자는 JSTOR가 소추를 원치 않았음에도 연방 검찰이 밀어붙인 점을 들어, 국가의 이해관계가 힘 있는 기관의 이해와 정렬될 때 부유한 상장기업은 법적 이점을 누린다는 취지로 꼬집었다. 상장 대기업은 최고 수준의 변호인단을 동원해 저작권법의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방어 논리를 몇 년에 걸쳐 정교하게 세울 수 있는 반면, 한 개인은 소송 비용과 이론적 최고 형량의 무게 앞에서 협상 테이블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HN 토론에서는 이론적 최고 형량을 앞세운 기소가 “실제로는 그 형이 선고될 리 없다”는 반론에 대해, 최고형의 위협 자체가 위협의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반박도 제기됐다.

셋째 축은 두 행위가 걸린 법 영역이 다르다는 구조적 사실이다. 스워츠 사건은 형사 사건이었다 —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징역형을 걸었다. 반면 카드리 대 메타는 민사 저작권 사건이다 — 사인(私人)인 저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했다. 형사와 민사는 입증 책임과 결과의 무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지위는 아직 확립되지 않은 회색지대다. “학습은 변형적 이용이라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는 논리는 차브리아 판사와, 평행 사건인 바츠 대 앤스로픽(Bartz v. Anthropic)에서 앨섭 판사가 각기 지지했지만, 앤스로픽 사건의 판사는 불법 복제본을 보관한 부분은 공정 이용과 별개로 문제가 된다고 선을 그었다. 요컨대 “학습 결과물의 변형성”과 “학습 재료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가”는 법적으로 분리돼 있고, 지금까지 판결들은 전자에 관대하고 후자에 유보적이다. 개인의 대량 다운로드는 취득 과정 자체가 형사 처벌의 표적이 됐지만, 기업의 대량 취득은 민사 청구의 한 갈래로 밀려나 아직 판단이 진행 중이다.

위축되는 오픈 웹, 열려 있는 질문

이 비대칭이 실무자에게 남기는 첫 번째 그림자는 위축효과(chilling effect)다. CFAA의 “허가” 경계가 모호한 한, 공개 데이터를 스크래핑하는 연구자·저널리스트·소규모 개발자는 자신이 언제 형사 처벌의 선을 넘는지 예측하기 어렵다. 밴 뷰런과 hiQ 판결이 그 경계를 다소 좁혀 준 것은 사실이지만, 두 판결 모두 개인이 수년간 소송을 감당한 끝에 얻어낸 결과다. 대다수의 개인과 소규모 팀에게 “일단 하고 법정에서 다투자”는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론적 최고 형량이나 소송 비용의 위협만으로도 합법일 수 있는 행위조차 미리 접게 만드는 것 — 그것이 위축효과의 본질이다.

두 번째 그림자는 규범의 이중화다. 같은 “웹에서 대량으로 데이터를 긁어 온다”는 행위가, 그것을 하는 주체가 개인이냐 자본과 변호 자원을 갖춘 기업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규범 아래 놓인다면, 오픈 웹의 데이터 접근 규칙은 사실상 힘의 함수가 된다. AI 학습 데이터를 둘러싼 최근 판결들이 기업의 대량 수집에 “변형적 이용”이라는 넓은 우산을 씌워 주는 동안, 개인이 공익적 목적으로 벌이는 접근에는 그만한 방패가 주어지지 않는다. curiousquail 글쓴이의 분노는 바로 이 지점을 겨눈다 — 다만 그 분노를 사실로 옮기면, 문제는 “메타가 벌을 받지 않았다”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행위가 주체에 따라 다른 법정에, 다른 무게로 회부된다”는 구조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세 갈래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낙관 시나리오는, 밴 뷰런·hiQ가 CFAA를 좁힌 흐름이 이어지고 AI 학습 데이터에 관한 라이선스 시장이 형성되어 취득의 적법성 기준이 명료해지는 경우다. 이때 개인과 기업 모두 예측 가능한 규칙 아래 놓인다. 비관 시나리오는, 차브리아 판결의 “변형적 이용” 논리가 대기업의 대량 취득을 사실상 면책하는 판례로 굳는 반면 개인의 접근에는 여전히 형사법의 재량이 남아, 비대칭이 제도로 고착되는 경우다. 현실 시나리오는 그 사이일 공산이 크다 — 학습의 변형성은 넓게 인정하되 불법 복제본의 취득·배포는 별도로 다투는 흐름이 이어지며, 저작권자·플랫폼·AI 기업 사이의 라이선스 협상과 소송이 수년간 병행되는 국면이다.

결론

스크래핑을 가른 것은 행위였는가, 아니면 그 행위를 한 자의 크기였는가. 사실을 따라가 보면 답은 “둘 다, 그러나 후자가 결정적이었다”에 가깝다. 스워츠와 메타가 걸린 법(형사 CFAA 대 민사 저작권)은 애초에 달랐고, 그 다름 자체가 우연이 아니다. 개인의 대량 다운로드는 취득 과정이 곧 범죄로 지목됐지만, 기업의 훨씬 큰 대량 취득은 “변형적 이용”이라는 방어막과 최고 수준의 변호 자원, 그리고 아직 확립되지 않은 회색지대의 보호를 받았다. 같은 행위가 시대(2011년 대 2025년의 CFAA 해석)와 주체(개인 대 상장기업)에 따라 다르게 재단된다는 사실은, 법이 무엇을 금지하느냐만큼이나 누구를 상대로 어떤 재량으로 집행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curiousquail 글은 의견 글이고, 그 감정적 언어 — “암살”, “독점적 표절 코드” 같은 표현 — 는 글쓴이의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을 벗겨낸 뒤에도 남는 구조는 견고하다. 독자에게 남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AI 학습 데이터의 적법성을 논할 때, 기준을 “결과물이 얼마나 변형적인가”에만 둘 것인가, 아니면 “그 재료를 어떻게, 누가 손에 넣었는가”까지 물을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을 개인과 기업에 똑같이 적용할 각오가 우리에게 있는가. 스워츠의 죽음이 남긴 애런법이 끝내 입법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각오가 아직 제도가 되지 못했음을 조용히 말해 준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