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요건정의 3 년의 기록 — Kumai Yu 가 발견한 ‘AI 가 빠르게 만들수록 병목은 상류로 옮겨간다’ 는 명제

코드는 AI 로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결정은 그만큼 빠르게 따라오지 못한다. 3 년의 실측이 가리키는 새 병목의 자리는 어디인가.

도입 — 142 likes 의 Qiita 회고가 만든 합의

2026 년 6 월 14 일, 일본 AI 스타트업 GEAR.indigo Biz 의 대표 Kumai Yu (熊井悠) 가 Qiita 에 한 편의 긴 회고문을 올렸다. 제목은 “3 년간 AI 요건정의에 매달려 온 모든 기록” 이었다. 분량은 작지 않다. 그러나 일본 엔지니어 커뮤니티의 반응 속도는 빨랐다. 24 시간 안에 142 likes 를 받았고, Qiita 의 주간 트렌딩 상위에 올랐다. 같은 주의 더 짧고 가벼운 글들이 더 큰 점수를 모은 적도 있지만, 이 회고는 다른 성격의 호응을 받았다. SIer 와 ITS (IT 서비스) 업계의 상류 공정 담당자가 자기 일의 미래에 관해 처음으로 자기 말을 갖게 되었다는 느낌의 호응이었다.

Kumai 의 출신은 일본 SIer 와 IT 컨설팅이다. 그가 3 년 동안 한 일은 단순하다. 요건정의 — SIer 업계의 가장 상류 공정 — 에 LLM 을 어디까지, 어떻게 끼워 넣을 수 있는가의 실측이다. 그 실측의 결론을 한 줄로 정리한 문장이 회고문의 가장 무거운 한 줄이다. “AI 로 개발이 빨라질수록, 병목은 상류로 이동한다.” 이 명제가 가리키는 풍경은 단순한 도구 회고를 넘어선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결정 자체가 새 병목이 된 시대에, 그 결정의 자리가 어디로 이동하는가를 묻는 일이다.

3 년의 시계열 — 도구의 진화와 발견의 순서

Kumai 의 기록은 시간 순으로 일곱 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의 핵심 발견 한 줄씩만 추려도 전체 풍경이 보인다.

2023.7 — “사전 정보 (용어집·전제) 의 정리가 정밀도를 결정한다.” 첫 단계는 단순했다. 회의 메모를 GPT-3.5 에 던져 플로우 다이어그램을 생성하는 일이었다. 결과는 자주 빗나갔다. 이유는 분명했다. 사내 용어, 비즈니스 도메인의 약어, 이전 회의의 결론 같은 사전 정보가 프롬프트에 들어가지 않으면 LLM 은 항상 일반적인 답으로 회귀했다. 첫 발견은 도구의 한계가 아니라 도구에 주는 컨텍스트의 한계였다.

2023.10 — “코드베이스야말로 최고의 컨텍스트다.” 두 번째 단계는 Cursor 의 등장과 함께 왔다. 회의 메모만이 아니라 기존 코드베이스 자체를 컨텍스트로 묶어 던지는 방식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요건정의 문서의 정밀도가 비약했다. 코드는 단순한 구현이 아니라 도메인의 가장 정직한 형식의 명세였다. Kumai 의 표현으로는 “정성적 정보라도 컨텍스트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 생성 정밀도가 격단으로 변한다.”

2024.3 — “노하우는 ‘전개’ 보다 ‘축적’ 에서 온다.” 사내 일부 팀에 ChatGPT 도입이 시작되었다. Kumai 의 발견은 도입 자체보다 그 결과에 있었다. 한 사람의 좋은 프롬프트를 다른 팀에 전개하려 해도 성공률이 낮았다. 정작 효과를 본 팀은 자기 도메인의 작은 프롬프트를 시간을 두고 축적한 팀이었다. 보편적 best practice 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도메인별 작은 컨텍스트의 누적이라는 더 무거운 일을 받아들인 순간이다.

2024.9 — “단발 프롬프트에서 ‘구조’ 로 전환.” 회의실에서 매번 한 줄짜리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회의 메모 → 사전 정보 → 코드베이스 → 출력 형식의 파이프라인을 자동화하는 방식으로 옮겼다. Project as Code 라는 용어가 이 단계에서 등장한다. Markdown 과 코드로 프로젝트의 모든 정보를 한 디렉터리에 모아 두고, 그 디렉터리 자체를 LLM 의 입력으로 쓴다.

2025.8 — “골격을 코드로, 요건을 프롬프트로 분리.” Cursor 와 Claude Code 가 본격 도입되면서, 시스템의 골격 코드는 사전에 깔아 두고, 그 위에 요건을 프롬프트로 얹는 방식이 정착했다. Kumai 가 “0 일 도입 (0 일 만에 동작하는 시스템 위에서 요건정의를 시작한다)” 이라고 부른 패턴이다. 이는 종이 위의 명세에서 시작해 한 달 뒤 첫 동작을 보던 종래 워터폴 사이클을 0 일로 압축한다.

2025.11 — “요건정의는 ‘문서 작성’ 에서 ‘스코프 결정’ 으로 옮겨간다.” 도구가 충분히 빨라진 자리에서 진짜 병목이 보였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결정. 어디까지 만들고 어디서 멈출 것인가의 합의. AI 가 문서를 빠르게 만들수록 그 문서가 매기는 결정의 무게가 늘었다. 종래의 SI 에서는 요건정의서 한 권이 “결정의 응축” 이었지만, AI 시대에는 요건정의서가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나와서 사람의 결정이 따라가지 못한다.

2026.5 — “도구 자체는 무료화하고, 결정을 막는 장벽을 제거한다.” GEAR.indigo Biz 가 BYOK (Bring Your Own Key) 방식으로 무료화된 순간이다. Kumai 의 표현은 분명하다. “월정액이라는 입구의 장벽을 남긴 채 ‘민주화’ 를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도구는 공기여야 한다는 그의 결론이 가장 작고 가장 단단하게 드러난 결정이다.

왜 SIer 의 상류 공정이 변하는가 — 결정의 민주화와 그 비용

Kumai 의 명제 — “AI 가 빠르게 만들수록 병목은 상류로 옮겨간다” — 가 일본 SI 업계에서 무거운 호응을 받은 이유는 그 업계의 구조와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이다. 일본 SIer 의 전통적 구조에서 상류 공정 (요건정의·기본설계) 은 가장 비싼 인력 (PM, 컨설턴트, 상급 SE) 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류 공정 (구현·테스트) 은 협력 회사 또는 오프쇼어의 더 싼 인력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두 층 사이의 비용 차이가 일본 SIer 의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AI 가 하류 공정의 비용을 0 에 수렴시키면 이 구조는 무너진다. Claude Code 와 Cursor 의 실측 데이터가 그것을 가시화한다. 한 사람의 시니어 엔지니어가 종래 5 인 팀의 구현 작업량을 처리한다. 일본 SIer 의 다층 하청 구조가 가진 비용 차이가 한 단계 좁아지는 셈이다. 좁아진 자리는 상류 공정의 부가가치다. 그래서 “AI 가 빠르게 만들수록 병목은 상류로 옮겨간다” 는 Kumai 의 한 줄이 SIer 업계의 자기 입장에서 가장 강하게 읽힌다.

상류 공정의 부가가치가 커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Kumai 의 회고가 가장 분명하게 짚는다. “요건정의는 ‘정리하는 공정’ 에서 ‘결정하는 공정’ 으로 변한다.” 종래의 요건정의는 (a) 고객의 흩어진 말을 정리하고, (b) 그것을 표준 양식의 문서로 변환하는 일이 주된 노동이었다. 그 노동의 90% 가 AI 로 자동화될 때, 남는 일은 (c)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결정뿐이다. 결정은 양식화될 수 없다. 결정은 책임을 진다. 결정은 정치적이다.

이 변화가 만들어내는 두 번째 비용이 있다. Kumai 가 회고에서 직접 짚는다. “전원이 ‘무엇을 만들 것인가’ 를 정의하는 장면에 서게 된다.” 종래의 SIer 에서는 결정은 PM 한 명, 컨설턴트 한 명의 일이었다. 결정의 민주화가 되는 자리에서, 결정의 합의 비용이 폭증한다. 비즈니스 측, 엔지니어, 디자이너, 고객 측 담당자 — 각자의 시각이 같은 회의실에서 충돌하면 결정의 속도는 오히려 느려질 수 있다. AI 가 만든 빠른 옵션이 더 많이, 더 자주 제공될수록 결정의 부담이 커진다.

Kumai 가 회고에 적은 또 다른 한 줄이 그 비용을 짚는다. “사내 일부 팀에서 AI 회의적인 의견이 많아, 단계적 도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입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 도구의 효용성과 무관하게 도입 속도를 결정한다. 무엇을 만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 종래의 결정자가 그 자리를 내어 줄 의지가 있는가의 정치적 질문이 같이 따라온다. Kumai 가 BYOK 무료화를 결정하면서 사내에서 “왜 만들어 놓은 제품을 공짜로 푸는가” 의 반발에 부딪혔다는 일화도 같은 맥락이다. 결정의 민주화는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권한의 분산이다.

함의와 전망 — 받는 측 SIer 의 다음 한 발

Kumai 의 회고가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는 셋으로 정리된다.

첫째, 상류 공정의 재구성. 종래의 요건정의서 한 권을 한 달간 쓰는 패턴은 사실상 종말이다. 새 패턴은 “0 일 도입된 동작하는 골격 위에서 단발 회의마다 한 시간 단위의 요건을 결정한다” 이다. 이 패턴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도큐먼트 편집기가 아니라, 회의 메모 → 결정 → 동작하는 골격에 즉시 반영 → 다음 회의의 입력 자료의 순환을 만드는 파이프라인이다. SIer 의 PM 이 다음 1 년 안에 익혀야 할 도구가 정확히 이것이다.

둘째, 결정자 측의 새 부담. AI 가 제공하는 빠른 옵션이 많아질수록 결정자의 양식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 종래의 결정자는 정보 부족 환경에서 한 줄로 결정하는 것이 일이었지만, 새 결정자는 정보 과잉 환경에서 한 줄로 결정하는 것이 일이다. 두 일은 같은 일이 아니다. 후자는 더 많은 정보 안에서 신호와 잡음을 구별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결정자 측의 인재상이 바뀌고 있다.

셋째, 도구 시장의 새 균형. Kumai 의 BYOK 무료화 결정은 일본 시장의 한 신호다. 종래 일본 SaaS 의 강한 월정액 모델 위에서, 도구의 진정한 민주화는 무료화를 향한다. 이는 글로벌 시장의 GitHub Copilot · Cursor · Claude Code 와 같은 결을 가진다. 일본의 사내 통합 도구 시장 (Notion, Slack, Confluence 의 일본 시장 점유율) 에 LLM 통합이 표준이 되는 시점에, 누가 무료 + BYOK 의 자리를 먼저 잡는가가 향후 2 년의 변곡점이 된다.

낙관적 시나리오는 SIer 들이 빠르게 상류 공정을 재구성하고, 결정의 민주화를 자기 부가가치로 흡수하는 풍경이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종래 결정자가 권한 분산에 저항해 변화를 지연시키고, 그동안 글로벌 도구가 일본 SIer 의 상류 공정 시장을 차지하는 풍경이다. 현실적인 풍경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Kumai 의 3 년 회고가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변화를 막을 길은 없고, 변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결정자의 의지다.

결론 — 도구가 공기가 되는 자리에서

Kumai 의 회고가 142 likes 를 받은 까닭은 일본 SIer 의 한 세대의 자기 일에 대한 질문을 한 사람의 실측이 정확히 짚었기 때문이다. AI 로 개발이 빨라질수록 무엇이 우리에게 남는가. Kumai 의 답은 단순하다. 결정. 그리고 결정이라는 일은 양식화될 수 없으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부가가치는 도리어 커진다.

진짜 질문은 그다음이다. 그 결정의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 종래의 PM 인가, 새 시대의 비즈니스 측 담당자인가, 자율 AI 에이전트 자체인가. 세 답이 모두 부분적으로 옳고, 세 답 모두 다음 3 년 안에 시험된다. 그 시험의 한가운데에서 Kumai 가 단단히 짚은 한 줄은 변하지 않는다. “도구는 공기여야 한다. 비용도 록인도 의식시키지 않고.” 그 공기 안에서 결정을 어떻게 하는가가, 다음 시대의 진짜 SIer 의 부가가치가 된다. 이 회고문 자체가 일본 SIer 업계가 자기 다음 세대의 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처음으로 자기 어휘로 묻기 시작한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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